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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흥여행]소록도 죽기전에 가뵈야할 국내여행지
    나의 여행이야기/전라도 2015. 8. 31. 07:00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섬 전남 고흥 소록도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하여 불리어진 소록도, 고흥반도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km가 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약 10여분간을 배를 이용해서 가야 했으나 지금은 거금도 연육교라고도 불리는 소록대교가 연결되어 있어 차로 편하게 왕래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명 나병이라 불렸던 한센환자들을 강제수용시켜 소록도하면 한센환자들의 섬으로 인식되어 일반인들은 접근을 할 수가 없었고 오직 환자와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과 가족들이 전부였던 곳이었습니다.  그들을 치료하고 지금도 한센병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국립소록병원은 1916년에 설립된 자혜의원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당시에는 조선내 유일한 한센병 전문의원이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한센병에 대한 전문적인 의료지식들이 모자라 무서운 병으로 취급되었으나 이제는 전국보건소에 나병환자 외래진료가 본격화되고 정착사업이 추진하는 나병관리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격리수용환자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1992년 한센병완치국가로 등록되어 더이상 한센병은 무서운 병이 아니라 완치가 가능한 병으로 바뀌었고 이제 소록도도 갈 수 없는 섬이 아니라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가꾸고 있는 섬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섬 곳곳에 당시의 남은 흔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그것을 통해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도 여행의 참맛이라고 생각합니다.



    27번국도를 이용해 소록대교를 지나 소록도주차장에 도착하면 거기서 부터 도보관람만이 허용됩니다. 이곳 주민들의 생활을 위해 방문객들은 국립소록도병원과 중앙공원 까지만 출입이 허용되며 섬방문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가능합니다. 진입로에는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백사장이 아름다운 소록도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입구에서 부터 시원하게 뻗어있는 차량진입로는 관계자나 주민들에게만 차량진입이 허용되고 당시에는 도로를 중심으로 환자들이 거주했던 병사지대와 의사 및 간호사등 직원들이 거주했던 직원지대로 나누어져 있었고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었다고 합니다. 과거에 한달에 한 번 그들의 가족들이 이 곳에서 재회를 했고 도로 양옆에 갈러선 채 눈으로만 만나야 했고 이 안타까운 광경을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라 하여 '수탄장'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


     




    산책로를 따라 중앙공원으로 향하는 길 여느 관광지처럼 소란스러움이나 번잡함은 없고 은근히 내리는 비에 연무까지 낀 소록도의 첫 만남은 스잔하기만 합니다. 소록도 안에는 일제 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 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록도 감금실과 한센병 자료관, 소록도 갱생원 신사 등 일제 강점기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 건물과 표지판 등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중앙공원은 1936년 일본인 자혜의원장이 천황에게 바치기 위해 환자들의 눈물과 땀을 동원해 지은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공원입니다.



    [축협도양지점 소록도 출장소]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이하는 국립소록도병원은 여전히 한센인들을 진료를 지속으로 하고 있으며 요양, 복지및 자활지원과 한센병에 관한 연구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한때 6천여명에 달했던 환자는 지금은 약 500여명으로 크게 줄었고 한센인들의 삶의 질 향상과 인권증진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지금의 마을공동체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중앙공원의 벽화는 소록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530여 명의 주민들을 일일이 방문해 사진을 찍어 작업을 했다고 하고 아픔의 역사를 간직했지만, 이제는 슬픔을 딛고 희망에 찬 미래를 꿈꾸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검시실]


    검시실 혹은 해부실로 불리는 이 건물(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6호)은 두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입구의 넓은 방은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로 사용되었고 안쪽은 주로 검시전의 사망환자 유해를 보관하는 영안실로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사망환자는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곳에서 사망원인에 대한 해부절차를 마친 뒤 간단한 장례식을 거쳐 섬내 화장장에서 화장을 한 후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소록도환자들에게 '3번 죽는다'라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첫번째가 한센병의 발병이고, 두번째는 죽은 후 시신해부이며, 세번째는 장례후 화장이라고 합니다.



    [감금실(문화재청 등록문화제 제67호)]





    감금실은 1935년 제정된 조선나예방령 제6조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 8조의 규정에 따라 설치된 일제강점기 인권탄압의 상징물입니다. 붉은 벽돌과 육중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南)과 북(北) 두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된 H자 형태로 방은 철창이 설치되어 있고 각 실의 마루바닥을 들어올리면 변기가 나오는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센환자들은 조선나예방령에 따라 직업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을 박탈당하였으며, 소록도에 수용된 환자들은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변론의 기회도 없이 감금, 감식, 금식, 체벌 등의 징벌을 받아야했고, 강제 노역이나 온갖 가학에도 굴종케 하고, 부당한 요양소 운영에 대한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일제 말기에는 부당한 처우와 박해에 항거하던 환자들이 무수히 이곳에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었으며, 출감 시에는 예외 없이 정관절제를 당하였다고 합니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리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당시 일본원장의 명을 거역했다 해서 감금당한 뒤 강제 정관절제를 당했던 이 동(李 東)이라는 환자의 시가 감금실 벽 한켠에 전시되어져 있습니다. ▲



    [다미안공적비]

    [구라탑]



    이곳의 중앙공원은 1936년 12월부터 3년 4개월 동안 연인원 6만여 명의 환자들이 강제 동원되어 19,834.8m²(6천평) 규모로 조성되었습니다. 지금도 공원안에 들어서면 환자들이 직접 가꾸어 놓은 갖가지 모양의 나무들과 함께 전체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고 공원 곳곳에는 환자들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기념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또한 구라탑은 1963년 국제캠프단이 소록도 한센인들이 조속한 치유를 기원하며 선물한 이 탑에는 ‘한센병은 낫는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끕니다.




    중앙공원을 돌아나와 다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 희미하게 안개너머로 보이는 소록대교. 섬과 섬 사이에 단절되었던 과거의 소록도를 연결시켜주어 암울하고 천형의 섬으로 불리던 섬에서 4.42㎢에 불과하지만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절경, 역사적 기념물 등으로 인해 고흥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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