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명량해전 그 역사의 현장에 가다] 진도 벽파진 이충무공전첩비와 진도대교 울돌목
    나의 여행이야기/전라도 2014. 8. 13. 07:00

     

     

     

    명량해전 그 역사의 현장에 가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 힘을 다해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은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 여기지 못 할 것 입니다."

    명량해전은 1597년(선조30년)10월 25일(음 9월16일) 정유재란때 이순신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 12척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 133척(총 참여함선은 333척)을 물리친 조선 전사에 빛나는 해전이었습니다.

    흥행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명량"은 8월 11일 1,100만을 돌파하는 기염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제주에 들어온지 횟수로 3년 영화는 거의 보지 못했다가 모처럼 보게된 "명량"은 지금의 을돌목을 배경으로 웅장한 전투신을 보게되면서 올 3월 진도에 갔을 때 그 격전지 현장을 다녀 온 기억이 생생히 떠올라 극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글을 올려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울돌목은 지금의 진도대교밑으로 흐르는 바다를 말합니다.

    수심이 얕아 실제 배가 지나는 폭도 좁았고 그중에서도 밀물때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좁은 울돌목으로 한꺼번에 밀려와서 서해로 빠져나가면서 해안의 양쪽 바닷가와 급경사를 이뤄 물이 쏟아지듯 빠른 조류가 흐릅니다. 울돌목 물살의 또 다른 특징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암초가 솟아 있다는 점입니다. 급조류로 흐르던 물살이 암초에 부딪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소용돌이치게 됩니다. 영화 "명량"은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전략으로 일전을 벌이는 대서사시적 전투가 압권입니다.

     

     

    제주항에서 목포가는 핑크돌핀호를 타면 추자도를 거쳐 벽파진을 지나 목포로 들어가게 됩니다.  제주에서 벽파까지는 약 2시간30분 정도 소요가 되고 하루에 한번만 운항을 합니다. 진도 벽파진은 이충무공이 일본 수군을 맞이하여 진을 치고 있던 곳,  명량해전의 시작인 역사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

     

    제주항출발 : 오전 9시30분  벽파도착 : 오전 11시55분 / 목포항 출발 : 오후 2시,  벽파도착 : 오후 2시 55분

    ★ 승선   요금 : 핑크돌핀호 5주년 기념할인 성인 : 33,200원, 소아: 21,650원

    ★ 문의   전화 : 제주사업본부 : 064-758-4234, 벽파사무소 : 061-542-4500

    ★ 진도터미널에서 벽파가는 버스 시간표(벽파,연동) : 07:00, 08:40, 11:10, 13:20, 16:20, 18:10 소요시간 약 50분

     

     

     

     

    비가 내리다가 잠시 숨을 고를 때 도착한 벽파항은 인적 드문 곳에 위치하여 적막하기만 합니다.  당시에는 급박하기만 했을 이곳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여객선 터미널 같지않은 자그마한 간이대합실만이 덩그러니 홀로 서 있습니다.   내리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그나마 시간에 맞춰 기다리는 버스 하나 그마저도 보내니 텅빈 벌판에 마치 홀로 서 있는 느낌만 남이있습니다. 이곳에는 이충무공전첩비가 있기에 그곳에 가 보려고 합니다. 여객선대합실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기에 금방 갈 수가 있었습니다. ▲

     

     

    보유하고 있는  전함은 달랑 12척, 왜군의 전함은 330여척이나 되니 그들과 해전을 벌이고자 하는 수군들의 마음은 매우 척척하기만 하였을 겁니다. 

    더군다나 이전에 칠천량해전에서 대파하여 많은 전사자를 내고 이미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의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영화 "명량"은 그들의 심정을 세밀히 묘사 하고 있어서 긴장감 있게 몰입이 됩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필히 살 것"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우렁찬 호령소리가 귓가에 아직도 맴돌고 있습니다. ▲

     

     

     

    벽파진 바다를 굽어보는 자그마한 돌산위에 세워진 이충무공전첩비1956년 진도군민들의 성금으로 모아 세워졌으며 노산 이은상선생이 글을 짓고 진도출신 서예가 손재형선생이 글을 남겼습니다.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고작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곳이 여기더니라....."로 시작되는 비문은 이충무공의 명량대첩에 대한 이야기전사한 선열들을 기리는 내용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

     

     

     

    2001년 진도향토유형유산 제5호로 지정이충무공전첩비는 정유재란 당시 이충무공의 명량해전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문득 또다시 영화 "명량"의 대사 한마디가 생각이 납니다. 영화 말미에 치열한 전투가 승리로 끝나고 전사한 부하장수 아들이 건내준 토란을 먹으며 독백하듯 뱉은 말  "이렇게 먹을 수 있으니 좋다"  가슴 끝이 저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하들에게는 독려를 하며 지휘를 하였지만 전력적으로 차이가 큰 것은 그에게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이미 그곳에서 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죽으리라 모든 것을 던져 싸웠었기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결과에 이렇게 살아서 입에 넣은 토란 한 조각의 생생한 식감은 그 어느 맛난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 입니다. ▲

     

     

     

    명량해전 그 치열한 전투의 현장

    영화 "명량"의 하이라이트 그 치열했던 해상전투씬의 역사적현장 울돌목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잠시라도 눈을 돌릴 수 없는 긴박감이 거의 한시간 동안 이어진 박진감 넘치는 해상전투씬은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흘러갑니다.  12척의 조선과 330여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의 대 서사시는 이 곳 울돌목에서 탄생되었습니다. 급조류로 흐르던 물살이 암초에 부딪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소용돌이치게 되는 회오리바다 명량입니다.

     

     

     

    한동안 숨을 고르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합니다.  진도대교를 끼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조망대가 잘 설치되어 있고 그 옆으로는 산책길이 조성되어져 있습니다. 거북선 용두를 보니 영화속에서 불타는 거북선이 생각이 납니다.  전소가 되며 끝내 용두마저 떨어져 불타는 장면은 내마음마저 애절해지고 맨 마지막 한산도전투씬에서 다시 나타난 거북선 그리고 용두는 반가우면서도 듬직한 기분으로 마무리 됩니다. ▲

     

     

     

     

     

    조선 수승리의 요인으로는 먼저 전함과 함포를 들 수 있습니다.

    일본군 전함첨저선으로 뱃머리가 뾰족하고 판자의 연결에 쇠못을 사용아타케부네(安宅船)고, 조선군의 전함뱃머리가 둥글고 나무못을 사용 판옥선입니다. 또한 판옥선의 크기일본군의 가장 큰 배인 아타케부네 보다 컸습니. 뱃머리가 둥글다는 것은 물에 잠기는 부분이 적어 회전이 용이하였고, 반면 왜선의 쇠못은 녹이 슬어 부식되는 결과를 가져와 배의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안겨주었고, 충격에 약해 쉽게 파손되었다. 조선 수군포격전만으로 전투를 수행하지 않았고, 필요한 경우나 불가피한 경우 충각전술(충파)일본군의 배를 부서뜨리는 돌격전법도 자주 구사했던 것도 이러한 배의 특성 덕분이었습니다. 가까이서는 잘 몰랐는데 높은데서 바라보는 울돌목은 역시 물살이 거세고 휘돌아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 "명량"을 보며 되집어본 역사의현장 진도 벽파진과 울돌목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게 비춰집니다. 다시금 이곳을 찾아가면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져 있겠지요?  여행을 하면서도 알고보는 풍경과 모르고 지나가는 풍경은 그 다가옴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항시 느껴왔지만 이렇듯 글로만 읽다가 영화를 통해 느껴지는 생생한 현장감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깨닫게 됩니다.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