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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의 검은보물 제주흑우] 제2편 제주흑우의 역사적 고찰
    설렘 그리고 감성 in Jeju/제주이야기 2015. 5. 21. 15:44



    제주흑우의 기원

    제주흑우의 기원유럽원우와 인도원우 혼혈종으로 중국과 몽고를 거쳐 한반도로 유래되었으며, 다른 품종과 교배됨이 없이 동종번식을 하면서 정립되었다고 합니다. 2006년 제주대 오문유 교수팀제주시 애월읍 고내유적지(A.D. 700-800), 곽지유적지(A.D. 0-900)에서 발견된 유골을 미토콘트리아 DNA D-loop영역 분석결과 제주흑우가 기원전부터 사육되었다는 내용을 Molecules and Cells 논문에 발표를 하였습니다.


    흑우사육에 대한 고찰고려 충렬왕3(1277) 몽고지역에서 소가 도입되며, 자세한 기록은 1702년 이형상 목사에 의해 제작된 탐라순력도에서 흑우를 점검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으며, 세종실록에서 제주흑우는 고기 맛(상강육이 특히 발달)이 우수하여 고려시대 이후 삼명일 (임금님 생신날, 동지, 정월 초하루)에 진상품으로 공출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내륙으로 흑우를 진상하기 위해서 선흘리 지경에서 방목하였고, 각 목장에서 선별된 흑우들은 제주목 관아인 관덕정 앞에서 우마적과 일일이 대조한 후. 선박으로 운반되어 해남, 강진, 영암등으로 내륙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제주흑우의 역사적고찰

    고려시대에서 사육되어온 흑우는 우황,우피등을 탐라에서 바쳤다는 기록이 있지만, 원나라지배 이전에는 농경과 자급자족 목적으로 소가 사육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제주에서의 초식가축은 연중방목 중심으로 사육되었고, 제주풍토기에도 우마는 겨울, 여름을 막론하고 모두 들에서 방목하므로 인가에는 우마분이 없으며, 우마분을 쌓아 두었다가 밭에 거름(퇴비화)하는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고 기술하였습니다. 방목사육기인 4월에서 10월에는 풀이 풍성하여 방목사육에 문제가 없었으나, 한겨울과 이른 봄에 풀이 고사한 때에는 가축들이 기아로 죽는 수가 불가승기(不可勝紀)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가축관리를 맡은 목자들은 가축의 분실되거나 폐사하였을 때는 변상조치를 했기 때문에 겨울철에도 고사초(마른 풀)를 찾아 먹이고, 허약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환축에게는 가을에 준비해 둔 야건초 등을 추가로 급여하면서 힘겨운 겨울을 나야 했습니다.

    이러한 고문헌을 토대로 볼 때 민가에서 소와 말을 많이 사육했으나  관에서는 진상에 충당할 목적으로  우적부와 마적부에 민가의 소와 말을 기록하여 관리하면서 착취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시기에 따라 사사로운 거래 및 도축을 못하게 하였습니다조선시대에 국영목장에서는 양호한 수컷을 골라 무리에 방목했기 때문에 고전적이지만 계획교배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옛 마을공동목장에서는  마을에서 출생한 송아지를 고전적인 외모심사를 통해 마을회의를 통해 선발한 후, 20-30두 자연 교배를 시킨 다음  송아지가 태어나면 자질을 보고서 마을 종모우를 결정하는  옛 선인들의 지혜로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제주목축 배경

    고려 원종 14(1273)에 삼벌초군을 여몽연합군에 의해 항파두리성 일대에서 평정한 후 이곳에 일본, 남송 경락의 군마 공급지로 만들고자 몽골군이 주둔하게 됩니다고려 충렬왕 2(1276)에 몽고마 160필을 보내 수산평(성산읍 수산리:대왕산과 수산봉 일대)에 방목토록 하였고, 이어 다음 해에 고산리(제주시 한경면 고산리)로 목마장을 확대한 것이 제주목장의 기원입니다. 1277년에 몽골이 말,, 낙타, 나귀, 양 등 5축과 개, 고라니, 해동매 등도 계속 보내 기르게 하였고, 또한 말관리 전문가 들이 들어오며, 이들을 목호(Harachi)라 하였고, 목축기술 전문가 목호들이 탁월한 축산기술은 제주목마장관리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자료: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고려 말기 제주목마장은 원(몽골제국)14개 목장 중 하나로 간주될 만큼 그 규모가 점차적으로 커져 한라산을 중심으로 8개 목장이 형성되고, 이것이 기초가 되어 조선 초기 10소장(목장)이 설치하게 된 배경으로 사료됩니다.


    제주지역의 자연적 여건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목축에 유리한 입지적 조건을 가지고 있고 ,토양과 기후 및 식생, 제주도 동서에 자리하고 있는 넓은 목초지와 곳곳에 위치하고 있는 용수가 그것입니다. 이러한 연유로 탐라국개벽신화에서부터 송아지 망아지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제주는 기후가 따뜻하고 한라산 산록 광활한 초원에는 수초가 풍부하고 우마(우마)를 해칠 맹수가 없으므로 목장으로는 최적지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김녕리 궤네기굴유적, 곽지패총 등에서 출토된 유물 등을 통해 볼 때 일찍부터 우마가 사육된 것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자료제공 : 제주농업마이스터대학/축산학과/한우전공 주임교수 문성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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