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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여행] 사명대사의 숨결이 남아있는 호국불교의 본사 표충사
    한국의 사찰/경상 2013. 8. 29. 07:00

     

     

     

     

     

     

     

    표충사(表忠寺)는 원래 신라의 고찰인 영정사(靈井寺)로 창건되었으며,   조선말기에 이르러  임진왜란 때의  의승대장(義僧大將)인 서산(西山)ㆍ사명(四溟)

    ㆍ기허(騎虛) 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표충서원(表忠書院)을 사찰 안에 둠으로써 표충사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절에 전해져 오는 『재약산영정사고적(載藥山

    靈井寺古蹟)』에 의하면 사찰의 창건은 829년(신라 흥덕왕 4)의 일이며, 다음과 같은 설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무렵(흥덕왕 4년경)  한 서역의 승려가  이 고장에 왔는데,  사람들은 그를  황발선인(黃髮仙人)이라 하였습니다.당시  이곳사람으로  고질병을 앓는 이가

    있어 병을 고칠 방도를 스님에게 가르쳐주길 빌었던 바,한 샘물을 가리키며 물을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  물을 마시자 씻은 듯이 병이 나았고, 이러한

    영험에 탄복한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앞 다투어 희사함으로써 웅장한 절을 창건하게 되었는데, 산명을 재약(載藥), 사명을 영정(靈井)이라 했습니다.”

     

     

    재약산은 신라시대때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화랑들이 호연지기를 연마했던 수련장입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께서 승병을 훈련시키며 호국정신을 계승한 호국불교의 본산입니다. 또한 한국 최고의 명의 허준에게 스승인 유의태가 자신의 시신을 마지막으로 선물하며 더욱 깊은 의학의 세계로 이끌었던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표충사는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경내에 서원을 건립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경내에 유교의 상징인 사당과 서원이 있는 것이 바로 표충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뜨거운 태양이 버겁기만 한 여름날 표충사를 향하는 길목에는 시원한 계곡과 녹음이 우거진 웅장한 고목들이 풍성

    하여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더위를 품은 피곤함은 불어오는 바람이 살포시 풀어줍니다. 

    오래된 고찰일수록 풍겨지는 중후한 느낌은 이곳 표충사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표충사를 품고있는 재약산의 이름은 표충사 경내에 있는 영정약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라 흥덕왕 셋째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약을 찾던 중 영정약수로

    치유하자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영정약수는 아직도 표충사를 참배하는 사람들에게 심신의 피로를 해소해주는 감로수로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효대사가 창건할 당시 표충사는 죽림사로 불렀으며, 흥덕왕때 황면선사가 재건하여 영정사로 부르다가, 조선 헌종 때 청허 사명 기허

    대사의진영과 위패를 옮겨오면서 표충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

     

     

     

    성보박물관인 유뮬관은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지 못했지만 만약 표충사에 들리신다면 사명대사의 뮤품 및 청동함은향완 등 다양한 유물들을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갈 시간 즈음 문이 열려 미처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

     

     

     

     

    표충사는 사찰 중 유일하게 사당과 서원이 함께 있는 도량이기도 합니다.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경내에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표충서원과

    서산, 사명,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을 세워 나라사랑과 백성사랑이 가득한 선조들의 수행력을 기리고 있습니다.  ▲

     

     

     

     

    표충사(表忠寺)의 가람은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배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표충사(表忠祠)라는 사당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표충사는 이 사당 영역을 포함하여 가람을 크게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사당영역,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한 영역, 대광전을 중심으로

    영역이 그것입니다.

     

    짙고 푸른 소나무와 느티나무 숲길을 따라 홍제교를 건너면 일주문을 맞이하게 되고, 이 일주문을 들어서면 우측으로 영사각(永思閣)과 가람신각(伽藍神閣)

    있습니다.  표충사는 중문격인  수충루를  들어서면서부터가  사당영역이라   할 수 있는데,  수충루를 들어서  펼쳐지는 넓은 마당에는  좌측으로  표충사

    (表忠祠)표충서원(表忠書院), 유물관ㆍ가람각(伽藍閣) 등이 있으며, 우측으로는 설법전(無說殿) 및 불교용품판매점, 해우소 등의 부속건물이 있습니다. ▲

     

     

     

     

     

     

     

    높은 석축 위에 위치한 사천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엄밀하게 말해 사찰영역이 됩니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삼층석탑과 석등으로 중심으로 왼편에는 만일루

    승련암ㆍ영각ㆍ칠성전 등의 건물들이 있으며, 오른편에는 대홍원전과 후원의 요사가 있는데 후원일곽은 담장을 둘러 정리하고 있습니다.

     

    표충사의 중심영역인 대광전영역은 남향한 대광전을 중심으로 좌측에 관음전과 명부전이 있으며, 우측에는 팔상전과 응진전이, 뒤쪽으로는 독성전ㆍ삼성각

    있으며, 대광전과 마주보는 전면에는 우화루와 범종각이 있습니다.  ▲

     

     

     

     

     

    팔상전은 1854년(철종 5년)에 당시 주지였던 환월선사(幻月禪師)가 창건하였으며 1926년 화재로 소실되어 1929년에 중창한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 위치는

    현재 종무소가 있는 자리이고 지금의 위치에는 표충서원이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일부 승려들이 사찰 내에 유교식 서원의 존재가 불가할 뿐 아니라

    대광전과 나란히 사당을 둔다는 것은 불경(不敬)하다는 지적이 있어 1971년에 자리를 맞바꾼 것이었습니다.

     

    대광전과 마찬가지로 잘 다듬어진 장대석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며,  내부에는 소조석가여래좌상만을 봉안되어

    있습니다. 팔상전은 현재 경상남도문화재자료 14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표충사의 중심 법당인 대광전은 조선후기에 건립되었으나 1926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929년에 중건된 것입니다.

    반듯하게 다듬은 장대석을 바르게 쌓은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활주를 세워놓았다.  공포

    내4출목(內四出目)ㆍ외3출목(外三出目)의 다포식이며, 문칸은 정면 5칸 모두가 빗살문으로 가운데 3칸은 사분합의 문을, 양쪽 2칸에는 이분합의 문을 달았

    데, 들어올려 차양으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답니다.

     

    또한 뒷면 5칸이 모두  벽이 아닌 창호로 마감된 점이 이채로우며, 측면 벽에 그린 그림 가운데 깊은 산속을  자동차가 달려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1929년에

    대광전을  중건하면서  당시 풍속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대광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의  소맷돌 조각과 잘 다듬어진  주초석 및 추녀마루의 잡상과

    기둥 위의 용머리 장식도 눈길을 끕니다.  ▲

     

     

     

     

    내부에는 전각의 명칭으로 보아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야 하는데, 석가ㆍ약사ㆍ아미타의 삼세불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삼세불은 모두 목불(木佛)로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고  허리가 짧아 매우 근엄하게  보이며, 17세기후반 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사중에 전하는 바로는 대광전이 중건될 때 사천의 도솔암에서

    옮겨왔다고 합니다.

     

    삼세불상 뒤의 후불탱은 1930년에 조성된 송파정순(松坡淨順)ㆍ예운상규(禮雲尙奎) 스님의 작품으로 부처님 주위에 보살ㆍ나한ㆍ천왕 등 권속이 옹위하고

    머리 위로는 무수한 화불(化佛)들이 표현되어 있는 독특한 구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신중단에 걸려 있는 신중탱 역시 이 당시에 함께 조성된 것으로  퇴운일

    섭(退耘日燮) 스님이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법당의 동쪽 벽에는 아미타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아미타여래가 관음ㆍ대세지보살을 거느리고 천상에서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모습입니다.

    화기에는  금어(金魚) 기전(琪銓) 스님에 의해  1885년(고종 22년) 6월 해인사  대웅전에서 조성하여 재약산 표충사  내원암에 봉안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대광전은 현재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삼국으로 나누어진 민족을 한국가로 통합할 수 있다는 정신적 토대를 제공하고, 병마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치유할 수 있는 약과 의술을 주고, 외적의 침입

    으로 위협받고 있는 국가에 대해서 외침을 막을 수 있는 호국정신을 심어주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인재들을 기르기 위해 교육한 영산 명찰이 있습니다.

    표충사를 품고 있는 재약산(載藥山)이 바로 그 영산이며, 표충사가 명찰입니다.   밀양에 찾아가면 들려볼만한 명찰 표충사, 억새가 춤추는 11월이면 더욱 감동

    을 느낄 수 있고 승병훈련장이었던 사자평에서 호연지기를 가슴 가득 담아오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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