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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여행] 천년고찰을 떠나는 여행 함월산 기림사 3부 성보박물관
    나의 여행이야기/경상도 2012. 3. 29. 14:00

     

     

     

     

     

     

     

    천년고찰 기림사는 보물사찰입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려면 사찰 입구에 있는 성보박물관에 들어가 보면 압니다.

    그윽한 경내의 여러전각을 둘러 보았으면 이제 기림사가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들어가 봅니다.

     

    유뮬관내에는 건칠보살좌상을 제외하고 모두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 복장에서 출현한 고려 및 조선시대 전기의 전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성보박물관의 대표적인 보물이라고 하면 바로 이 기림사건칠관음보살좌상이 아닌가 합니다. 박물관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이 보살상은

    보물 제415호인 조선시대의 건칠보살좌상(乾漆菩薩坐像)입니다. 전체높이는 91㎝로 왼쪽 발을 오른쪽 무릎에 닿도록 구부리고, 오른쪽

    발은 자연스럽게 내렸습니다. 즉 고려시대의 불화에 자주 등장하는 반가상의 관음보살과 같은 양식이라고 합니다.

     

    건칠불은 진흙으로 형체를 만들고 그 위에 삼베를 감은 다음, 다시 진흙을 단단하게 발라 고정한 후 속을 빼내는 방법으로 조성한다고

    합니다. 이 위에 도금을 입히면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즉 속이 빈 소상(塑像)입니다. 자세하게 양식을 살펴보면 머리는 상투를 비교적

    높게 틀고 그 위에 별도로 분리되는 보관을 얹었습니다.

    보관의 표면에는 양각의 당초문을 고르게 새겼고, 상호는 둥근 편인데, 지그시 감은 눈은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고,
    오뚝한 코와

    자연스럽게 다문 입이 단단한 인상을 줍니다. 또한 둥근 꽃 모양의 귀걸이와 가슴에 길게 늘어뜨린 세 가닥 장식의 목걸이는 보살상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합니다.

    체구에 비해 자그마한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에, 왼손은 왼쪽 무릎에 편안하게 얹었습니다.
    법의는 통견으로 어깨에서 넓게 펼쳐

    가슴을 보이도록 하였고, 군의(裙衣)는 가슴까지 올려 목걸이의 장식과 맞닿았고, 띠매듭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아래쪽은 길게 내려

    발목까지 덮었고, 옷주름을 단순하게 처리하였습니다.

     

    보살상과 함께 전하는 목조대좌에서 1501년(연산군 7)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성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보살상과 대좌가 동시에 제작된 것인지 알 수 없고,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때가 조성시기인지, 혹은 보수한 시기인지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비례가 부족하고 조선초기의 다른 불상에 비해 풍만한 신체를 지녔다는 점에서 원나라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므로 조성시기는 1501년 보다 앞설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간결함과 생략의 조형미를 주조로 하면서도 보살의 화려함을

    아울러 지닌 관음보살상입니다.

     

     

     

     

    다음은 시왕도를 그린 탱화입니다. 명부(冥府)의 10대왕의 재판 광경과 지옥에서 고통받는 망자(亡者: 죽은 사람)들을 묘사한 탱화이며 보통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많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좌) 시왕 중 첫번째 왕으로 진광대왕(秦廣大王)이며  명도(冥途)에서 마인 초칠일(初七日)의 일을 관장하는 관청의 명관(冥官)입니다.  여러관리들을

         거느리고 망인을 질책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악을 멀리하고 선을 닦게 하는 일을 맡은 왕으로, 망인들이 자신이 지은 죄업에 따라 죽은 후 7일째

         되는 낧에  이 대왕에 나아가 죄의 다스림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 제2왕 초강대왕(初江大王)으로 명도(冥途)에서 망인이 14일이 되는 날 심판을 관장하는 왕입니다.  초강(初江)가에 관청을 세우고 망인의 도하(渡河)를

         감시하므로 초강왕이라고 부릅니다.  망자는 제1왕에게 재판을 받은 후 초강왕 법정에 가기전 삼도천(三途川)을 건너야 하는데, 건너편에는

         현의옹(懸衣翁)과 탈의파(奪衣婆)가 기다리고 있다가 탈의파가 죄인의 옷을 빼앗아 현의옹에게 건네주면 현의옹이 이 옷을 받아 옆에 있는

         의령수(衣領樹)에 걸어 그 무게에 따라 죄의 무게를 달면 그에 의해 강을 건너는 삼도가 정해진다고 합니다.

        

     

     

     

    좌상) 제3왕인 송제대왕(宋帝大王)은 명도(冥途)에 살며 망인의 삼칠일(21일)의 일을 관장하는 왕입니다.  대해(大海)의 동남 옥초석(沃焦石) 밑의

            대지옥 안에 별도로 16지옥을 두어 죄의 경중에 따라 죄인을 각 지옥으로 보내는 일을 맡으며, 주로 사람들의 사음(邪淫)의 일을 다스립니다.

     

    우상) 제4왕인 오관대왕(五官大王)은 명도(冥途)에서 오형(五刑)을 주관하는 왕으로 망인 사칠(28일)일의 일을 맡아봅니다. 세 강 사이에 큰 궁전을

            짓고 중생들의 망어(妄語)의 죄를 다스리는데, 업칭(業秤)에 사람들의 죄업을 달아서 그 경중에 따라 벌을 내린다고 합니다.

            오관대왕의 오관은 수관(水官), 철관(鐵官), 화관(火官), 작관(作官), 토관(土官)으로서 각각 살인과 도둑질, 사음, 망어, 음주를 금하는 일을

            맡아본다고 합니다.  오관왕은 원래 도교 안의 인물로서 염라대왕 밑에서 지옥의 여러 일을 맡다가 후에 불교의 체계 안에 흡수되어 사왕 중

            네번째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좌하) 제5왕인 염라대왕(閻羅大王)은 사왕 중 다섯번째 왕으로 야마(夜摩), 염마(焰摩) 등으로도 불리어집니다.  원래 인도에서는 최초로 죽은 자로서

            천상의 교주였으나 지옥사상이 발달하면서 지하지옥의 왕으로 나타나 망인 오칠일(35일)의 일을 관장한다고 합니다.  염라대왕청에는

            광명왕원(光明王院)과 선명칭원(善名稱院)이라는 별궁이 있어 광명왕경(光明王鏡: 업경)이 걸려 있습니다.  이 거울에는 죄인이 지은 현세에서의

            일체 선악행위가 비춰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거울에 비친 생전의 죄에 따라 벌을 준다고 합니다.

     

    우하) 제6왕인 변성대왕(變成大王)은 명도에서 망인 육칠일(42일)의 일을 관장하는 왕으로 변성왕(變成王)이라고도 합니다.  앞의 오관대왕과 염라대왕

            앞에서 업칭과 업경에 의해 재판을 받고도 죄가 남은 사람이 있으면 지옥에 보내 벌을 받게 하는 일을 맡으며, 사람들에게 악을 폐지하고 선을

            권장하는 명관입니다. 변성왕이 대궐에서는 특별한 점은 없지만 유족들의 공덕에 의해 망자가 천당 또는 지옥 중 어디로 전생할 것인가가 결정됩니다.

     

     

     

     

    좌상) 제7왕인 태산대왕(泰山大王)은 일명 태산왕이라고 하고 이왕은 명도에서 망인 칠칠일(49일)의 일을 관장하는 왕으로, 염라대왕의 서기이며 인간의

            선악을 기록하여 죄인이 태어날 곳을 정합니다. 이 왕 앞에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 천 등 육도가 있어서 죄인을 그 죄업에 따라 생처(生處),

            혹은 지옥에 보내는 일을 정합니다.  태산왕은 본래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도교의 신이었던 태산부군(泰山府君)에서 유래한 것으로 불교의 범신

            중에 흡수되어 시왕 중 일곱번째 왕이 되었답니다.

     

    우상) 제8왕인 평등대왕(平等大王)은 명도에 살면서 망인 백일의 일을 관장하는 왕으로, 팔한팔열지옥(八寒八熱地獄)의 사자(使者)와 옥졸을 거느립니다.

            공평하게 죄복(罪福)의 업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평등왕(平等王) 또는 평정왕(平正王)이라 하며, 염라대왕의 별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평등왕은 안으로는 자비를 머금고 밖으로는 분노의 상으로 나타나 교화를 베풀며 또한 형벌을 가하는 왕이라 합니다.

     

    좌하) 제9왕인 도시대왕(都市大王)은 명도에서 망인 1주기의 일을 관장하는 왕입니다.  도제왕(都帝王) 또는 도조왕(都弔王)이라고도 하며 사람들에게

            법화경 및 아미타불 조성의 공덕을 말해주는 왕이라고 합니다.  시왕생칠경(十王生七經)에서는 망인의 태어날 곳을 정하기 위해서는 친족들이

            불상조성 등 공덕을 쌓을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우하) 제10왕인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은 시왕중 마지막 왕으로 명도에서 삼회기(三回忌)의 일을 맡고 있습니다.  2관중옥사(二官衆獄司)를

            거느리고 중생의 어리석음의 번뇌를 다스리는 왕인데, 망인은 죽은 후 여러왕을 거치면서 그 죄를 심판받고 최후로 오도전륜대왕 앞에 이르러

            다시 태어날 곳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기림사의 오랜 역사와 사격(寺格)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금동불두 통일신라]

     

    [ 납석제여래좌상 조선시대]

     

     [납석제여래좌상 조선시대]

     

     [연화문수막새기와 통일신라]

     

     [세존응화명암막새기와]

     

    불화는 이념적인 성격불교의 이뇸과 교리에 입각하여 중생교화를 주목적으로 제작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불화의 영역과 불교교리와 사상을 주제로 한 성스러운 평면 조형예술로서 표현되답니다.

    후불탱화나 후불벽화 등은 본존화의 성격도 갖지만 그보다는 본존상을 장엄하는 뜻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

    이중 한국특유의 민간신앙과 무속적인 것, 선종계열의 고승들을 비롯한 국사(國師)들의 초상화들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도 고승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용파당대선사진영]

     

     [좌상-송암당대선사진영, 우상-서파당대선사진영, 좌하-경암당대선사진영, 우하-남화당대선사진영]

     

     

      [불조종파지도 - 조선시대]

     

    [인장 - 조선시대]

     

     

     [사리장엄구 - 통일신라시대]

     

     

    금은자 사경은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제작된 상지은니 대반야경을 위시하여 백지금니의 귀중한 불경으로서

    고려말기에 유행하던 사경문화의 일면을 고찰할 수가 있습니다.

     

     [불설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해수능엄경(佛設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제 4의 7,  8의 9 보물 제959호 고려시대 1370년]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22 보물 제959호 고려시대]

     

     [가사-조선시대 11조]

     

     [가사-조선시대 9조]

     

     

    기림사 소장유물로는 목비8점과 석조(石造)치미 1점, 금구 한점등 총 10점을 일컷는데 목비는 두점밖에는 안보입니다.

    이 유물들을 총 망라해 문화재자료 30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목비(木碑)는 조선후기인 18~19세기 사찰의 중수 상황 등 사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꼽힌답니다.

    비의 내용을 보면 절과 경주 주민과의 관계를 비롯 당시의 사회 형편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흔하게 불 수 있는 석비나 철비와는 달리 목비는 드물어서 그 희귀성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석조 치미는 파실된 부분이 많습니다.  능골, 종대, 날개부분이 그나마 잘 남아 있으며

    몸통에는 양각된 꽃무늬가 4점이 남아있습니다. 이 치미는 조각수법이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기와제품이 아닌 석조품은 이 유물이 유일한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구는 직경 70cm, 두께 11.5cm, 뒷면의 내구 직경은 56cm의 원형입니다.

    청동으로 만들어 졌으며 이 금구에 새겨진 강희 61년(조선 경종2년. 1722)의 명문으로 보아 그때 제작된 것으로 보인답니다.

     

     

     

     [기림사 전경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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