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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도여행] 남종화의 성지 소치 허련(허유)의 운림산방
    나의 여행이야기/전라도 2012. 3. 23. 07:00

     

     

     

     

     

     

     

     

    예향의 보고 진도에는 전통 남화의 본거지인 운림산방이 있습니다.  그곳은 조선조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痴)허유(許維)가 말년에 거처하던 곳으로

    화실의 당호를 '운림각'이라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가 허련의 그림을 보고 반해 중국 원나라 4대화가의 한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 하였는데  

    그와 견줄만 하다 하여 직접 호를 소치(小痴)라 지어줬다고 합니다. 

     

    소치는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나 18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 (草衣大師 : 張意恂) 밑에서 공제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하게됩니다.

    비록 낙도에서 태어났으나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詩), 서(書), 화(畵)에 능하여 40세 되던 1847년 7월 낙선제에서 헌종을 뵐 수가 있었고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흥선대원군, 권돈인, 민영익, 정학연 등을 비롯하여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 아래 쌍계사 남쪽에 자리를 잡아 집을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냈습니다.

     

     

     

     

    첨찰산을 깃봉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자리잡은 운림산방은 아침 저녁으로 운무가 자주 보이니 운림(雲林)이라는 

    당호가 참 어울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그는 그림에만 열중하다 고종29년(1893)에 숨을 거둡니다.

     

     

     

     

    한국 남종화의 본거지인 운림산방은 한동안 피폐했으나 남농이 복원해 진도군에 기증했고, 지난해 국가지정 명승 제80호가 됐다고 합니다.

     

    서울대박물관에 소장된 소치의 대표작 중에 하나로 부채에 소담스러운 집과 나무와 산이 어우러지게 그린 1866년 작품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의 소재도

    운림산방입니다. 본채·사랑채·연못 등으로 조성해 아름다우면서 단아한 품격이 돋보이는 이곳에서 미산(米山) 허형(1862~1938), 남농(南農) 허건(1908~1987) 등 소치의 직계 자손들이 화맥(畵脈)을 이어오면서 각각 소치 못잖은 나름의 독자적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합니다.

     

    최근 진도군이 운림산방의 소치기념관 명예관장으로 임명한 임전(林田) 허문 화백은 소치의 증손자이며. 허 화백의 부친으로 요절한 천재화가인

    임인(林人) 허림(1917~1942)이 미산의 막내아들로 남농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사계가 제각기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아름다운을 뽐내는 이곳 운림산방은 절로 멋진 그림과 시가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정도로 소소하면서도

    뛰어난 풍경을 자아냅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과 풍요로운 환경을 간직한 진도에서는 많은 문인과 화백, 예인이 탄생하고 활약을 해왔나 봅니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 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습니다. 소치가 서화에 뛰어나 민영익은 '묵신(墨神)'이라 했으며 정문조는 여기에 시를 더하여 삼절(三絶)이라 하였답니다.

     

     

     

     

     

    소치(小痴)는 나중에 당(唐)나라 남종화(南宗畵)와 수묵산수화(水墨山水畵)의 효시(嚆矢)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서 ‘허유(許維)’라고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허유(許維)’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산수(山水), 인물(人物), 묵화(墨畵)에 특히 뛰어나 추사(秋史)로부터 “그 화법이 우리나라 촌티를 모두 벗어버렸다”고 극찬을 받기도 했던 소치는

    추사의 유배 시절 모습을 소동파(蘇東坡 : 1036~1101)의「입극도(笠屐圖)」를 번안해 그린「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을 비롯하여

    많은 묵적(墨蹟)을 남겼는데, 대표작(代表作)은 소치의 산수화 중 최고로 손꼽히는「선면산수(扇面山水 : 21.0×60.8㎝이며 서울대 박물관 소장」로

    화면 가득 메운 화제(畵題)는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 1892~1950(?))의 글씨이며, 전형적인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으로 갈필(渴筆)과

    갈색(褐色)이 아주 문기(文氣)있게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소치 허유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운림사(雲林祠)에는 추사 김정희의 그림인 세한도가 걸려져 있습니다.  제주에 가면 추사적거지라는 곳이 있는데

    추사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하던 곳으로 그곳에는 추사가 그곳에서 지내면서 그린 작품들과 글들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보았던 세한도가 이곳에도 결려 있네요.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의 변함없는 의리를 날씨가 추워진 뒤 제일 늦게 낙엽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답례로 그려준 것으로. 조선 말기를 풍미했던 김정희의 문인화 이념의 최고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옆으로 긴 화면에는 오른쪽에 '세한도'라는 제목과 '우선시상'(藕船是賞 : 우선 이상적에게 이것을 줌)·'완당'이라는 관서(款書)를 쓰고, '정희'와 '완당'이라는 도인을 찍었습니다. 또한 특이한 것은 또다른 낙관이 하나 더 찍혀 있는데 사자성어를 표현하는 '주무방인'이란 낙관으로 '장무상망'이라고 쓰여있습니다.

    그 뜻은 오랫동안 서로 잊지말자라는 내용으로 유배지까지 변함없이 찾아 준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뜻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이곳 운림산방에는 소치기념관과 남도전통미술관 그리고 토요일마다 남도예술은행에서 개최하는 토요그림경매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진도역사관도 있어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보배섬 진도를 예향의 고장으로 더욱 발돋음 하게 한 운림산방, 시원한 바닷바람을 타고 화사한 봄소식과 함께 만물이 소생하듯 살아있는 한국화의 성지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자산이 되기를 거듭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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