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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여행] 1200여년간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아름다운 백제의 예술품을 고이 간직한 무령왕릉나의 여행이야기/충청도 2012. 3. 3. 07:00
무령왕릉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위치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7번째로 발견된 고분이며,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입니다.
송산리 고분군에는 총 7기의 고분들이 있는데 전축분 2기와 석축분 5기의 분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인 1927년에 고분중 1~4호분을 조사햇지만, 굴식 돌방무덤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고 그후 1932년 우연히 발견된 5호분도 1~4호분과 마찬가지로
굴식 돌방무덤이었지만, 역시 도굴되었습니다.
하나 남은 6호분은 1933년 당시 공주고보(현제 공주고) 한문교사였던 일본인 가루베 지온(輕部慈恩 : 1897~1970)이 무단 도굴한 뒤,
일제가 부장품을 모두 약탈해 가 이 역시 남은 부장품이 없고 묘만 남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중국 남조 양나라의 영향을 받은 굴식 벽돌무덤은 벽돌 표면에 흑색 안료를 칠한 다음에 회칠을 하고, 그 위에 벽화 제작을 위한 점토를 바르고
다시 백색 안료로 바탕칠을 하여 사신도(四神圖)를 그렸는데, 사신도는 중국 전국시대 말 천문오행사상을 배경으로 대두되어 한(漢)과 남북조시대에
풍수지리설과 신선사상 등과 결부되어 크게 유행한 것이랍니다.
사방의 별자리를 상징하는 동물로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거북(북)을 그린 사신도는 주로 무덤과 석관·석비(石碑)·화상석(畵像石)·기와·구리거울 등에
사방의 수호와 벽사(辟邪)를 목적으로 장식했는데, 한반도에 수입된 것은 고구려 때 한사군을 통해서였고, 신도는 세계문화유산인 고구려 강서대묘를 비롯하여 호남리 사신총 이외에 백제의 송산리 6호분과 부여의 능산리 동하총 고분 등 2곳만 있을 만큼 희귀하고, 전축분에 사신도를 그린 것은 송산리 6호분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1971년 7월 5일 장마철을 맞아 빗물이 넘치지 않도록 도랑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한 7호분(전축분)은 아무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기에 도굴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세상에 알려진 훌륭한 보물창고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왕비의 지석과 왕의 지석(誌石)이 무덤 안에서 발견됨으로서 피장자가 백제 25대 무령왕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삼국사기의 문헌적 가치에 대한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금석문 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하여
고고학계에서는 해방이후 최대의 성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싸그리 도굴되어 누구의 능인지도 알 수 없는 송산리고분 이름조차 알 수 없어1~6호로 불리고 분명 그 당시에는 대단한 인물의 무덤이었을 것이
오늘날 이름없는 무덤으로 전락하고 제일 마지막에 발견된 7호고분이 무령왕의 무덤으로 밝혀져 통칭 무령왕릉이라고 오늘날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마침 그곳에서는 한국풍속문화원에서 개최한 '무령임금 작은마당'이라는 제목으로 무령왕릉에 대한 연구가 역사학적, 고고학적으로만 연구되어 있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무령왕릉에 관해 풍속문화로 조명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무령 임금제를 올리면서 '풍속문화로 만난 무령임금 무덤의 12가지 비밀'이란 책을
출간하고 헌책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전축분(벽돌무덤) 내 사신도(四神圖)를 그린 유일한 사례인 송산리 6호분(사적 제13호)
정호섭 한성대 교수는 "송산리 6호분의 벽화는 전축분 내 사신도를 그린 유일한 사례로, 벽돌 표면에 흑색 안료를 칠한 다음 회(灰) 칠을 하였고, 그 위에
벽화제작을 위한 점토 바탕층을 조성했고, 백색 안료를 이용해 바탕칠을 했다"며 "현상적으로 보면 무덤축조는 양나라, 벽화전통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고,
벽화기법은 백제의 창안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점차 벽화가 훼손되어져 가고 있어 벽화에 대한 장기적인 보존과 체계적인 연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이름은 사마(斯摩:斯麻)·융(隆)·여륭(餘隆). 동성왕의 둘째 아들 혹은 동성왕의 이모형(異母兄)이라고도 합니다. 501년 12월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보낸 자객에게 동성왕이 살해되자 그 뒤를 이어 즉위했습니다. 502년 정월 가림성(加林城)에 근거를 두고 저항하던 백가를 토벌했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싸우면서
중국 남조의 양(梁)나라에 사신을 보내 외교관계를 강화하며 민생의 안정에도 힘써 제방을 수축하고 유식자(遊食者)들을 구제해 농사를 짓게 했던 무령왕.
웅진(공주)시대의 번성기를 이룩했던 무령왕은 그가 영면했던 그의 무덤에서도 강력한 군주였음을 증명하듯 화려하고 다양한 순장품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백제의 숨결, 그리고 많지 않은 백제의 문화들을 엿볼 수 있는 공주 그리고 그것에 큰 일조를 한 무령왕릉. 백제를 알아가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중 유일하게 왕릉 중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덤이며 총 2,900여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의 존재를 알린 무령왕릉은
어쩌면 죽어서도 백제를 사랑하는 그의 의지가 무덤을 보호하고 후세에 아름다운 백제의 문명을 전하고자 함은 아닌 지 생각을 해 봅니다.
쳔년여의 세월이 흘러 이제 그당시의 찬란했던 백제의 문명들이 여기저기서 하나 둘 발견되고 그것을 토대로 재조명 하는 백제문명
더 많은 기록과 유물들이 발견되어 그들의 삶과 예술혼들을 보다 더 알 수 있는 날들이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쉽게도 무령왕릉 모형전시관이 공사중에 있어 들어가보질 못했습니다. 송산리 6호고분과 더불어 무령왕릉의 내부를 재현하여 그 안의 모습들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는데 그만 시기가 맞지를 않았습니다. 올해 3월 31일까지 공사가 끝난다고 하니 4월부터는 구경할 수 있을듯 합니다.
특히 관심이 가는 송산리 6호 고분의 벽화를 완벽하게 재현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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