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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유물전시관문화리뷰/박물관·전시관 2012. 2. 12. 00:03
미륵사지유뮬전시관은 미륵사지의 발굴과 유물들을 절터의 발굴현장 바로 옆에 지어진 전시관으로 백제의 문화및 미륵사의 역사,
토속신앙, 생활문화 등이 복합되어 있는 이륵사지 발굴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먼저 뜨이는 것은 바로 중앙실에 있는 미륵사의 1/50 축소모형입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980년 부터 1996년까지 약 17년간 미륵사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그 성과를 토대로 축소 복원한 것입니다.
미륵사는 백제 제30대 무왕(재위 : 600~641)대에 창건되었다고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출토유물을 살펴본 결과 사실임이 확인 되었습니다.
가람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미륵사는 석가모니불이 아닌 미륵불을 모신 절로 추정되며 미륵불은 미래에 오실 부처로 세번의 설법을 통해
중생을 구원하신다고 합니다.
미륵을 모신 금당과 탑을 세곳에 세운 것은 삼회의 설법을 상징한다고 하며 이곳 금마에 미륵사를 세운 이유는 미륵이 하생할 인연이 있는 땅으로
이러한 용화세상의 세계를 가람으로 구성했다 합니다.
보는 바와같이 3탑 3금당이 나란히 있는 가람의 형태에서 중원의 목탑과 금당의 규모는 좌우 가람의 2배가 되는데, 좌우 가람의 석탑은 석탑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것이라고 합니다. 석탑이 여기 익산의 금마 미륵사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은 중국의 전탑, 일본의 목탑등과 비교할 때 백제인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이라 하며 무왕이 이러한 미륵사를 당시의 수도인 부여에 짓지 않고 여기에 지은 것은 무왕이 수도를 부여에서 이곳 금마로 옮기려고 했다는 사실과 함께
정치,경제, 군사, 종교적인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문헌실은 미륵사의 전반적인 역사와 한국의 주요불교사를 함께 연표로 정리하고 미륵사 창건설화 및 사상과 변천과정에 관련된 문헌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유물실은 사리장엄, 금동향로, 치미등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대표유물과 백제에서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의 미륵사에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된 공간입니다
중앙실에 전시되어 있는 치미는 사찰이나 궁궐의 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 놓이는 장식기와로 재앙을 피하기 위한 벽사적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날짐승 꼬리모양을 하고 있으며 하늘의 신과 지상의 인간을 연결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고도 합니다. 전시된 치미는 백제치미입니다.
동원승방지에서 출토되어 복원 되었는데 높이 99cm, 길이 85cm, 뒤 깃의 길이 53cm 입니다.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
사리장엄(舍利莊嚴)이란 사리를 장중하고 엄숙하게 꾸미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물울 뜻합니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를 위해 해체 조사 과정 중,
2009년 1월 14일 석탑 1층 심주석(心柱石)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 등을 기원하고자 봉안한 사리장엄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리장엄은 사리호(舍利壺)와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 금제소형판(金製小形板), 은제허리띠장식 등 모두 19종 683점의
다양한 유물로 구성되어 있씁니다. 사리호는 높이 13cm, 어깨 폭 7.7cm의 작은 병 모양으로 보주형(寶珠形) 손잡이 뚜껑이 있는 금동제사리 외호와
금제사리 내호, 유리제사리 병의 삼중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사리 내, 외호의 표면의 화려하고 다양한 문양과 정교한 세공기법은
백제 금속 공예기술의 최고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은 다른 사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가 한꺼번에 발견되었고,
가공 기법도 정교하고 세련되어 국보급 유물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됩니다.
사리장엄 발견으로 백제의 사리봉안 방식과 의례를 새로이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금제사리봉안기
금제사리봉안기는 가로 15.3cm, 세로 10.3cm, 두께 1.3mm의 금판 형식으로 모두 193자(앞면 99자, 뒷면 94자)를 음각하고 앞면에는 붉은 칠을 하여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였습니다. 명문 내용에는 백제왕후가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639) 정월에 사리를 봉안하여 왕실의 안녕과
백성들의 불도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봉안기에는 미륵사의 창건 배경과 발원자, 석탑의 건립 연대등이 쓰여 있어서 백제 문헌사 연구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동시에 금석문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것으로 기대합니다.
더군다나 이 금제사리봉안기가 발견됨으로 미륵사는 삼국유사에서 전해진 무왕의 왕비 선화공주의 발원이 아닌 백제의 고위관리 사택덕적의 딸 출신인 왕비의
발원에 의하여 건립되었다는 내용이 있어 유명한 서동요의 두 주인공인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는 허구일 수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1진열 장에는 유리, 옥, 청동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리, 옥 중에는 여기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납유리가 있습니다.
유리성분을 분석 실험해 본 결과 납성분이 대량 함유된 유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리제작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도가니가 출토되었고, 다른곳에서 출토된 유리와 비교해 본 결과 자체적으로 생산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금동향로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동향로는 짐승 얼굴 모양의 다리가 4개 달린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그 유래가 없는 독특한 형태라는데 주목됩니다.
금동향로는 높이 30cm, 지름 29.7cm의 비교적 큰 크기로 크게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원형으로 높게 솟은 뚜껑(蓋部)과 운두가 낮은 납작한 대야 모양의
몸체(身部) 그리고 4개의 다리로 구성된 대부(臺部)로 나눌 수 있습니다.
뚜껑에는 연화문(蓮花文), 심장 모양(心葉形), 구름모양의 장식이 있으며, 몸체에는 사자 얼굴 모양의 다리와 짐승 얼굴 모양의 장식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백제 말기부터 통일신라 8세기 중반무렵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륵사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기와의 문양이 다양해지고 전형적인 암막새가 출현하였습니다. 명문와도 종류가 많은데 '미륵사'명 기와가 처음으로 보이며
중국 연호(개원4년開元四年 716)명 기와, 대중12년(大中12年 858) 명 토기가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에도 미륵사가 계속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공양구인 금동향로와 청동제품, 철기류, 다양한 도기, 그리고 목기등등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들이 미륵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미륵사의 차 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자기들도 출토되어 통일신라시대를 지나 고려시대, 그리고 폐사되는 조선중기 1600년을 전후하는
시기까지 차문화가 계속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치미 뒤편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토기는 대체로 승려들의 생활터(북승방지 내부)에서 출토 되었는데, 아마 저장용기로 쓰였던 것 같습니다.
땅을파고 묻어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으며, 김장독과 같은 용도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8진열 장에는 불상, 탑, 향로, 동종, 금동장식, 염주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석불은 불두가 없고, 청동불두 2기중 1기는 토심이 박혀 있습니다. 소형 금동여래입상은 비록 작지만 백제시대의 것으로 백제인의 불심을 보여주는 여래상 같습니다.
토제나발의 나발은 부처님의 곱슬머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철불의 곱슬머리를 상상하시면 될 것입니다.
토제부조탑은 작지만 아주 드문 것입니다. 청동, 금동 소형탑의 상륜부입니다. 실상사 탑 사진을 통해 상륜부의 완형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소형향로와 향로받침은 불교의식에 쓰여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소형종방울에는 혀가 달려있습니다. 동종은 화재로 인해 파열된 것 같습니다.
금동광배는 소형 금동불의 광배로 여겨집니다. 이것은 토제, 옥제, 염주입니다.
[청동보살손 고려시대 중앙박물관소장]
조선시대의 미륵사와 출토유믈등이 전시되어져 있습니다.
다양한 기법의 분청사기와 백자, 기와, 토기, 약간의 토제불상편, 농기구류, 흙으로 만든 생활용품들이 출토 되었습니다.
건축문화실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미륵사의 창건과정이 그려져 있어 이해를 쉽게 하고 있습니다.
건축문화실은 미륵사지 출토 건축 유물인 기와류와 미륵사 창건과정과 웅장함을 알 수 있는 그림, 모형, 미륵사와 삼국의 사찰 특성 비교 패널등을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들어서면 바로 해체전의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이 미니어처로 전시되어져 있습니다.
또한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기와와 그용도등을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기와에 쓰인 명문들..
명문와는 암, 수키와의 등에 글씨가 있는 것으로 약 7천여점이 출토 되었습니다. 명문의 내용은 미륵사와 같은 사찰의 이름이 가장 많고
년대를 알 수 있는 연호와 간지, 사주자 및 제작자이름 금마저와 같은 지명표기,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있는 명문들입니다.
동탑지 기단부 토층전사
복원된 동탑의 기단부 및 그 하부 구조는 이미 성토된 마사점토층을 탑이 들어설 자리보다 넓게 되파기한 후 기단부인 초석과
초반석은 물론, 그 하부까지 돌과 흙으로 번갈아 다져 놓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초반석 주위의 돌과 점토는 불에 그을린 흔적도 있고 그 아랫단에 채워진 흙은 회백색 모래로만 채워진 것이 이채롭습니다.
미륵사지에 가서 그 터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유물전시관에 가서 생성과정이라든지 출토된 유물등을 둘러보며
그 역사의 과정들을 알아보는 것도 더욱 미륵사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그리 많이 볼 수 없는 백제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 더욱 유익한 관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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