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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여행] 나라의 아픔을 함께 슬퍼한 호국고찰 - 완주 송광사 -한국의 사찰/전라 2011. 8. 5. 19:04
뜨거운 8월의 햇살이 대지위를 더욱 달구지만 완주 송광사 가는 길에는
홍련과 백련들이 아름답게 피어 더위에 지친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하고 마음 또한 넉넉하게 해 줍니다.
송광사 담벽에는 능수화가 부끄러운 듯이 수즙은 미소를 띄우며 지나가는 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능수화의 환영을 받으며 걷는 발걸음 또한 가볍기만 합니다.
큰부처님을 만나 큰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는 송광사. 심호흡을 크게하고 한 걸음 내딛어 들어가봅니다.
호국도량으로 알려진 이곳 완주 송광사는 조선 인조 19년(1641)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무사히 본국에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국난으로 일체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병자호란 때에 전주사고(왕조실록)를 지키기 위해 승군 700명이 머무르는 등 민족의 역사적 영욕을 함께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송광사는 도의선사가 절터를 찾다가 영천수를 발견하고 터를 잡았는데 그때가 신라 진평왕 5년(583)이었고 그후 경문왕 7년(867)에
구산선문 중 도의국사의 가지산파 제3조인 보조국사 체징(804~880)에 의해 중창되었답니다.
그후 폐사가 되어 주춧돌만 가시덤불속에 남아 있던 것을 고려 보조국사가 이곳을 지나다 大성지임을 알고 표시를 해 두었고
순천 송광사를 개창한 후 제자들에게 완주 송광사를 복원 중창할 것을 부탁한 지 수백년이 지난 조선 광해군 15년(1622)에
응호, 숭명, 운정, 득신, 홍신 등 보조국사 제자들이 덕림스님을 중창주로 모시고 복원 중창 하였다고 합니다.
완주 송광사에는 호국원찰이라서 그런 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면 대웅전, 나한전, 지장전의 불상들이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특히 대웅전의 불상은 KAL기 폭파사건, 12.12사태, 군산 훼리호 침몰사건, 강릉 잠수함 출몰사건, 그리고 97년 12월 2일부터 13일까지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려 I.M.F한파를 예견하였다 합니다.
부처님의 영험이 크다 하여 많은 참배객들이 방문하는 참배처가 되고 있으며 전국 4대 지당기도 도량이기도 합니다.
국내 유일의 아(亞)자형 종각입니다. 이곳은 "완주송광사종루"란 명칭으로 보물 제124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으로 많은 기둥과 다포로 둘러져 있어 크지는 않지만 웅장한 힘과 기운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보물 제1243호인 대웅전에는 조선 인조 14년(1634)에 벽암국사가 다시짓고, 철종 8년(1857)에 제봉선사가 한 번의 공사를 더하여 완성하였답니다.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의 다포식 형태로 꾸며 있습니다.
또한 대웅전에 모신 소조 삼존불은 복장유물과 더불어 보물 제1274호 지정되어 있으며 이 삼존불은 인조 19년(1641)에 흙으로 빚은 불상입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측은 약사여래와 우측은 아미타불이 자리잡고 있어 전세,현세,내세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법당안에 있는 좌불상으로는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또한 석가의 화현이라 불리는 진목스님이 대웅전 삼존불 조성시 증명법사로 초청되었으나 부여 무량사에서도 동시에 초청된 관계로
송광사에는 주장자를, 무량사에는 단주를 보내 법력을 보이셨는데 주장자가 밤낮으로 꼿꼿이 서서 법상을 물리는 신의함을 나투하였다고 합니다.
삼존불 앞에는 3개의 목조전패가 있는데 이를 목조삼전패(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0호)라 합니다.
이 나무패는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목패(木牌), 원패(願牌)라고도 합니다.
뒷면에는 각각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 왕비전하수제년(王妃殿下壽齊年), 세자전하수천추(世子殿下壽千秋)라고
적혀 있는데, 인조 임금과 왕비, 그리고 소현세자, 봉림대군의 안녕을 빌어드린 조각이라 합니다.
연꽃과 구름 그리고 왕을 상징하는 용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특히 왕을 상징하는 중앙 나무 패에 있는 구름과 용이 뒤섞인 그림은
불교미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합니다.
이곳은 나한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으로 이안에 모신 불상들은 조선 효종7년(1656)에 만들어 졌습니다.
가운데에 석가여래를 두고 그 좌우에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배치하였습니다. 나한전 네 벽에 있는 오백나한은 남자 스님들로
오백상수(五百上首)라고도 합니다. 이들은 석가여래의 제자로 아라한과(阿羅漢果)의 진리를 깨달아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하고, 윤회의 삶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도록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들입니다. 송광사 오백나한전목조여래삼존상과 권속상일괄이란 명칭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삼성각으로 칠성신, 산신, 독성을 함께 모신 전각입니다.
불교가 우리사회에 토착화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습합되어 나타난 특특한 형태의 신앙으로 보통 본당의 뒤쪽에 자리하며, 삼성의 존상과 탱화를 봉안한답니다.
삼성을 독립된 전각으로 모실 때는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등으로 부른답니다.
칠성은 본래 도교에서 유래한 칠성신앙으로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재물과 재능을 주고 아이들의 수명을 관장하며 비를 내려 풍년을 들게 해주는
신으로 숭앙되어 왔으며, 칠성의 주존으로 치성광여래를 모시는데, 약사여래와 협시인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좌우에 협시로 배치됩니다.
송광사를 나오면서 고인돌인듯한 돌에 시선이 자꾸 갑니다.
주변에 아무런 표식이 없어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모양새가 꼭 고인돌인듯 합니다.
화려하게 핀 홍련은 송광사를 나오는 아쉬움을 포근히 달래주고 여전히 내리쬐는 8월의 햇살은 잠시 잊었던 땀을 흘리게 합니다.
송광사의 부처님은 나라에 큰 국환이 있을때에 땀을 흘리신다는데 내 몸에 흐르는 땀은 그저 더위에 반응하는 신체의 일시적 현상일 뿐 그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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