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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의 맵시 - 온화하면서도 섬세했던 백제인들의 생활문화를 살펴본다.
    문화리뷰/박물관·전시관 2012. 5. 31. 07:00

     

     

     

     

     

     

     

     

     

     

     

     

    서울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한성백제박물관은 2천년전 서울을 기반으로 자리를 잡았던 벡제인들의 생활문화를 철저한 고증으로 복원하여 개관기념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백제의 맵시 - 옷과 꾸미개]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고 있는 이 특별기획전은 개관일로부터 9월14일까지 운영되어져 간다고 합니다.

    백제인들은 어떤 옷감으로 무슨 옷을 만들어 입었는가와 그 옷에 어떤 꾸미개로 장식을 하였는 지 이번 전시회를 통해 더 자세히 알 수가 있을 듯 합니다.

     

     

     

     

    2012년 4월30일 한성백제박물관이 개관을 하고 그 개관 기념으로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는 백제의 맵시전은 자주 접할 수 없는 백제인들의 복장문화를 재조명 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문헌과 자료 그라고 그림 등을 통한 고증을 통해 엄격히 준비하여 이렇게 전시를 하는 것 조차도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이렇게 편안히 전시물들을 보면서 백제인들의 맵시를 엿 볼 수가 있었습니다.

     

     

     

     

    백제인들은 옷감을 대마(大麻)의 줄기에서 얻은 삼실로 직조를 해서 얻은 직물, 즉 삼배라 하는 전통직물에서 얻었고, 고대문헌에는 마(麻), 마포(麻布), 포(布)로 기록되어 있으며 라고도 부르기도 하였답니다. 또한 저마(苧麻)라는 모시풀의 인피섬유로 직조를 하여쓴데 이를 모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역시 고대부터 사용이 되어져 왔는데, 고대에는 저(苧), 저포(苧布)라 하였으며 고려시대 문헌에는 모시(毛施), 모시배(毛施背)로 기록되어져 있다고 합니다.

     

     

     

     

    또한 모섬유라 하여 짐승의 털을 방적하여 실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모섬유에 습기와 열을 가해 압축시킨 전(氈,felt)으로 만들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고대에는 모직물을 계(罽)라고 하였으며, 전을 마구류의 장식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죽으로도 옷을 만들었는데 주로 신발, 갑옷, 마구류 등의 제작이나 장식에 사용되었다 합니다

    그외 견(絹)이라고 하는 누에고치를 원료로 하는 섬유와, 목화를 이용하여 솜이나 옷을 만드는데 사용을 하였다고 합니다.

     

     

     

     

    직물을 짜는 기구는 요직기와 수직기가 있었으며 요직기는 우측에 걸린 기구로 도투마리라 불리는 양끝에 있는 두개의 둥근막대로 하나는 벽에 고정을 시키고 나머지 하나는 사용자의 허리에 묶어 고정을 시킨 후 몸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직조를 하는 기구로 가장 간단하며 단순하여 원시시대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답니다.

    또한 수직기는 이보다 진보된 직기로 기대가 갖추어진 직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고대의 직기에 관한 그림자료는 고구려 대안리1호묘의 벽화에서 그려진 그림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백제의 고분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다종다섭기에서만 제작이 가능한 직물이 발견되나 정확한 직기의 형태는 아직 파악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왕이 입엇던 옷으로 옷감의 색이 화려하고 금실로 테두리를 두어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이 들며 마치 호피무늬를 연상하게 하는 옷감은 단순치 않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허리띠 또한 가죽으로 만든 듯한 간결하면서도 우아한 장식과 문양들도 은근한 화려함을 느끼게 하게 됩니다.

     

     

     

     

     

    오히려 왕에 비해 그 모양이 조촐하며 의외로 간결한 왕비의 복장은 상대적으로 다소 초라할 정도로 보이고 있는데 이 의복이 평상복으로 입은 건지가 궁금할 정도 입니다

    옷 형태만으로 보아 당시 오히려 여성 보다는 남성이 더욱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꾸미기를 좋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앙비의 관은 섬세하면서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왕의 관에 비해 아름다운 곡선의 미를 더욱 살렸고 마치 불꽃문양처럼 타오르는 형상과 꽃의 모양을 한 것처럼 양쪽에 달려있는 문양들이 의상 보다는 장신구에 더욱 치중을 두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옷은 평범하나 장식구에 포인트를 주어 그 단순함을 커버하는 형식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다지 많은 양의 복식들이 나열되지는 않고 있었지만 왕실과 귀족 그리고 사신과 군사, 서민까지의 다양한 목식문화를 살펴볼 수 있었으며 역시 왕족에서 귀족까지의 의상들이 그 색감이 화려하고 일반 서민으로 내려 갈수록 옷의 재질과 모양들이 차이가 나는 것들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왕자와 공주 그리고 자녀들]

     

     [군인과 시비]

     

    [서민들]

     

     

     

    백제의 꾸미개

    백제 한성기의 대표적인 꾸미개는 금동관모, 목걸이, 귀걸이, 허리띠장식, 금동신발 등이라고 합니다.  백제의 금동관모는 정면이 뾰족하고 옆에서 보았을 때 반원형을 띠는 고깔모양이라고 합니다.  금동신발은 중심선에서 좌우 옆판이 합쳐져 있고 바닥은 스파이크처럼 작은 금동 못이 촘촘히 밖혀 있기도 합니다. 이는 평상시에 신고 다닌는 신발이 아니라 사후에 신는 신발인듯 하고 이를 증명하는 것은 공주박물관에서의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이 바로 그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외 칼자루의 끝에 둥근고리가 있는 둥근고리큰칼은 고리안에도 장식문양이 있어 무기로서의 기능뿐만이 아니라 피장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능을 보이는 것이로 무기에서도 장신구를 만들 정도로 멋을 부리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백제 무덤에서는 많은 양의 구슬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옥은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마한 사람들은 금, 은 보다 구슬을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백제로 이어져 다양한 꾸미개로 옥을 사용하였으며 옷에도 부착을 하였다고 합니다.  구슬 꾸미개는 주로 옥류, 유리, 천하석, 연옥, 수정, 호박 등이고 옥은 형태에 따라 둥근옥, 대롱옥, 연주옥, 다면옥으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제작기법은 거푸집에 부어서 제작하는 방법과 녹인 유리용액을 철봉에 말아 일정한 크기로 잘라서 만드는 방법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백제고증의 자료출처는 우리나라 보다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그 자료를 참조하는 것이 많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자료가 많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해상무역이 활발하고 다른 다라와 교역을 많이 하였던 백제인 터라 복식문화를 일본에 전해 기록된 일본의 기록과

    중국의 기록에 남아있는 백제인의 모습을 토대로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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