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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여행] 100년전 그곳을 거닐다. 대구 근대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구근대역사관
    문화리뷰/박물관·전시관 2012. 5. 16. 07:00

     

     

     

     

     

     

     

     

     

     

    대구는 다른 지역보다도 많은 근대역사유물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에서 부터 일제 강점기 시절 그 역사의 흐름을 자세히 소개시켜 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대구근대역사관입니다.  이 건물 역시 산업은행의 분신이었던 조선식산은행의 대구지점으로 1932년에 건립디었으며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된 근매문화유산인 겁입니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지금은 대구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100년전 그곳을 거닐다 - 근대 한국의 명소와 경관전]을 전시하고 있으며 유뮬 55점과 패널사진 120점 정도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기관은 2012년 3월6일부터 7월 1일까지 이며 대구 근대사를 한눈에 조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져 있다고 합니다.

     

     

     

     

    [조선식산은행실]

     

     

    이번 전시에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은 명소와 북한지역을 포함하여 각지방의 경관 및 문화유적을 소개하고 있으며 대구, 서울 등의 시가지와 공공시설,

    그리고 문화유적과 명승지를 대구와 비교하면서 이해하게끔 꾸몄다 합니다.

     

    [대구 식산은행]

     

    [경복궁]

     

     

     

     

    전통도시 대구의 해체와 재구성 - 대구는 지리적으로 영남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구석기시대로부터 인간이 거주하였던 흔적들이 확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인 신문왕9년(689)에는 달구벌(대구)로 천도를 계획한 일도 있었으며, 조선시대인 선조34년(1601)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명실상부한 경상도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구사람들은 1830년대 천주교 전래 이후 근대 문물을 수용하기 시작하였고, 1900년대 초부터는 일본인들의 이주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근대문물에 대한 수용과 배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주적인 근대화를 모색해 나갑답니다.  그 과정에서 지방행정기관의 중심이었던 경상감영과 대구라는 도시의 형체를 이루고 있던 대구읍성의 훼철은 도시대구의 해체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합니다.

     

    경상감영의 변화 - 조선시대의 지방행정체제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각각 도에 관찰사(감사)를 파견하였답니다.  감영은 관찰사가 집무하던 관청으로 오늘날 도청에 해당됩니다.  경상감영은 조선 개국이래 경주, 상주, 칠곡, 안동을 거쳐 선조34년(1601) 대구에 정착하여 고종32년(1895) 지방제도가 개편될 때가지 존손하였다고 합니다.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과 관사인 징청각등의 시설은 감영의 대구 정착이후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1906년 대한제국의 국권 침탈을 목적으로 설치된 일제 통감부의 하부조직인 대구 이사청의 개설로 선화당과 징청각의 건물은 근대식 사무 공간으로 변질되었고,

    그후 1909년 읍성 안에 십자도로가 개통되면서 두 건물은 경상북도 청사의 부속 사무실이 되었고, 감영 내의 다른 건물들도 일부분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일제의 침략 정책의 도구로 이용된 철도 대구에서도 예외는 없습니다.  1905(광무9년)년 1월 1일 경부선 전 구간 개통과 함께 대구역도 업무를 시작했고 조선의 지방행정도시였던 대구도 일제 식민지 수탈 자본의 영향으로 근대 상업도시로 변모해 갔다고 합니다.  객차의 한부분을 재현한 이곳에서는 객차안에 스크린을 설치하여 당시의 대구풍경들을 재현해 놓고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였던 대구

     

    외세 침략의 원인이 외채에 있다고 보고 이를 갚아 자주성을 회복하자는 획기적인 발상은 한 대구.

    그 중심축에는 1907년 2월 서상돈, 괌광재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구광문사에서 국채 1,300만원(당시 정부 1년 예산정도)을

    갚자는 제안에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16명으로 구성된 발기이들은 북후정에서 국채보상모금을 위한 군민대회를 열고,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하였고, 이후 전 국민의 호응으로 서울에서 국채보상기성회가 설치되어 당시 각 신문사의 후원을 받아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불이 확산되어 나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대구의 정신은 대구독립만세운동, 2.28 민주화운동등 오늘날까지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고 합니다.

     

     

     

     

     

    6.25전쟁과 대구 - 우리나라 전투를 담은 영화에 숱하게 많이 나왔던 낙동강전투 한국전쟁 발발후 승승장구하며 남진하던 북한군을 맞아 승리하며 지켜내었던 낙동강방어선은 한국전쟁에서 빼놀 수 없는 중요한 전투입니다.  그 이후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이 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였던 대구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몰려왔고 그들을 위해 천막과 판자촌등은 산비탈을 메울 정도 였으며 공공시설뿐만 아니라 도로위까지 점유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미군 군사시설과 위락시설, 양키시장등이 들어설 정도로 급작스런 인구증가와 주택난, 미군 관련시설들은 대구의 면모를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고 합니다.

     

     

     

     

    이곳을 찾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을 대구의 역사와 한국의 근대사를 다시한번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최근들어 박물관 및 역사관들을 찾아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여행은 몰랐던 역사적인 사실들을 알게 하는 또하나의 즐거움이 되고 있습니다.

    보고 즐기는 여행에서 알고 즐기는 여행으로의 전환이 되어가고 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근대역사관을 들러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력거가 전시되어져 있습니다.  1890년대 일본을 통해 전해졌다는 인력거는 주로 관리, 부자, 기생 등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고 합니다. 대구에서는 주로 역전에 집중되어 있었다며 가격은 매우 비쌌으며 부내 5정 이내 가격이 30전 내외였다고 합니다. 당시 쌀 한되 가격이 약 39전이었다고 하니 일반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인력거이기도 합니다.  많은 구박과 멸시를 참아내며 생계수단을 위해 끌어야 했던 생계수단의 하나였던 것 입니다.

     

    갑자기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이 생각납니다.  인력꾼 김첨지는 아픈 아내가 옆에 있어 달라는 사정도 마다하고 돈을 벌러 나갑니다. 열흘동안 돈 구경을 못한 그는

    어떻하든 돌을 벌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이 없어도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날따라 운이 통해서인지 돈 많은 손님들을 만나 모처럼 많은 돈을 만지게 됩니다. 하지만 가슴 한켠에서는 불안감이 계속 밀려오고 아내가 먹고 싶다던 설렁탕을 사 줄 수 있다는 기쁨으로 열심히 일하던 그는 그날 하루에 30원에 달하는 돈을 손에 주게 됩니다. 그 와중에도 불안감은 계속 밀려오고 바로 집에가기를 두려워 했던 그는 술집에서 취기로 불안감을 떨쳐내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를 맞이한 건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한 아내와 죽은 아내의 빈 젖을 빨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러한 비극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 [운수좋은 날]은 인력거꾼의 아픔을 통해 식민지 시대의 민중들의

    비극적인 일상을 번어법 기법으로 통해 묘사하고 있었던 겁니다.  왠지 모르게 인력거를 보니 갑자기 그 소설이 생각나며 가슴 깊숙히 아픔이 저려옵니다..

     

     

     

     

     

     

    1층 전시실을 둘러보고 2층으로 향합니다..그곳에서는 체험학습실과 기획전시실 등이 있는데 체함학습실에서는 못보던 전통놀이들이 설명과 함께 체험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직접 경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저에게는 처음 보는 전통놀이이며 유명하다고 하는데 저는 이제서야 할게 됩니다. 

     

     

     

     

     

     

     

     

     

     

    또한 기획전시실에는 당시의 대구모습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되어져 있어 당시의 생활상들을 사진을 통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대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의 모습들이 전시되어져 있어 근대 대한민국의 면면을 사진을 통해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며 다시 한번 느낀거지만 전쟁을 통해 황폐해진 국토와 주권을 잃으면 얼마나 고통을 받는 지를

    실감하며 국권회복과 민족을 위해 노력하던 이들을 다시 한번 추모하게 됩니다.

     

    또한 진정 존경받고 외세에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주권국가로서 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분이 계셨으면 합니다.

    근대는 물론 현대에 들어와서 후대에 멋진 지도자를 우리도 보유하고 있었다는 자랑도 수 있고 진정 사랑하는 분이 나오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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