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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여행]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 곳 팔공산왕건길
    나의 여행이야기/경상도 2012. 5. 12. 07:00

     

     

     

     

     

     

     

    어느 순간에서 부터 우리나라에는 걷기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올레길을 시작하여 지리산 둘레길, 변산의 마실길, 태안의 솔향기길 등등

    그외 앞으로도 더욱 많은 길들이 생길 듯 합니다.  건강도 챙기고 차로 다니면서 볼 수 없는 풍경들이 걸으면서 천천히 감살 할 수 있어 더욱 인기가 많은 듯 합니다.

    대구에도 팔공산 올레길이 생겼습니다.  그 중 시골풍경이 가득하고 그윽한 사과향기가 물씬 풍기는 팔공산 올레 4코스 왕건길을 찾아갑니다. 

     

     

     

     

    일명 평광동 왕건길로 알려진 이 코스는 효자 강순향나무에서부터 시작하여 평광초등학교-평광지-모영재-재바우농원

    -첨백당-평광종점 정류장으로 이어지는 7.5km의 편도 3시간 코스입니다.

    이 코스에서는 시골마을의 한적함을 느낄 수 있고 우리나라 최고령 홍옥사과나무를 볼 수있는 재바우농원과

    광복소나무가 있는 첨백당이 특이하며 관심있게 볼만합니다.

     

     

     

     

    이곳은 단양 우(禹)씨인 우익신(禹翊臣)이 임진왜란때 남하하여 이곳 평광동에 세거지로 삼은 이래 그의 8대손인 용재(龍齋), 명재(命載)를 봉향하기 위해

    고종 16년(1879) 정각으로 건립하였는데 원래는 건너편 산속 후미진 곳에 세워져 있었으나 너무 외딴 곳이라서 관리에 불편을 느낀 후손들이 1966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답니다. 동네 어귀 냇가에 와룡지처가 있다하여 골안 이름과 어울려 와룡정이라 이름하였답니다.

     

     

     

     

     

    이곳 또한 우익신의 10대손인 만희재(晩喜齋) 영석(暎錫), 11대손인 단봉(丹峰) 규환(圭煥), 12대손인 운제(雲齋) 효봉(孝鳳)을 기리기 위해 3대의 추원정(追遠亭)으로

    후손들이 1970년에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와룡정이나 이곳 경희정은 서로 지척에 있어 몇걸음이 되지 않습니다. 경희정이나 와횽정은 모두 돌로 쌓은 담벽이 특이합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평광동왕건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전신주에 걸려 있습니다.  언뜻보면 그냥 평범한 시골 골목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거닐면서 마을의 유래나 이야기들을 세밀히 볼 수 가 있어 참 좋습니다.

     

     

     

     

    잔잔한 물소리가 너무 좋은 자그마한 연못에 그래도 갖출 것은 다 갖춘 물레방아와 아름다운 꽃들이 나를 반겨줍니다..

    어찌보면 지루할듯도 하였던 길에 이러한 볼거리들은 또다른 기쁨을 줍니다.   잠시 머물러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드디어 팔공산 왕건길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로 알려진 광복소나무가 심어진 첨백당에 도착하였습니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곳은

    아버지가 병이 들자 손가락 셋을 차례로 끊어 수혈해 14년을 더 살게 하였다 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이라는 벼슬이 내려졌다는 효자 우효중(禹孝重)과 조선 말 나라가

    기울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은거한 절의의 선비 우명식(禹命植)을 기리고 후손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합니다.

     

    단기(檀紀) 연호를 돌에 새겨놓은 광복 소나무는 종손이었던 우하정선생이 발의하여 우채정등 사촌 4명이 인근 산에서 소나무를 굴취해 3그루를 심었는데 1그루는 죽고

    2그루가 살았는데 1그루라도 옳게 키우기 위해 1그루를 뽑아내어 한그루만 남게 되었으며 표석은 논에서 돌을 가져와 다듬어서 글을 썼다고 합니다.

     

     

     

     

     

    평면 일자형의 집으로 맞배지붕이고 집 가운데 대청마루는 양쪽 툇마루보다 낮게 놓여져 있습니다. 좌우측에 난간을 두어 마루를 한칸씩 달아낸 것이 참 이채롭습니다.

     

     

     

     

    첨백당(瞻栢堂)이란 당호는 우명식의 묘소가 있는 백밭골(栢田谷)을 우러러보는 집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고종 33년(1896)에 지어졌고 1924년에 새로 고친적이

    있다고 합니다.  와룡정과 경희정과는 달리 이단의 석축위에 돌틈사이로 흙을 발라서 만든 담의 형식이 좀 다릅니다.

     

     

     

     

     

    광복 소나무만 보다가 무심히 지나버릴 수 있는 나무가 있는데 광복소나무옆에 우뚝 솟은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느티나무는 첨백당을 지을 때 같이 심었다고 합니다.

    1896년에 지었으니 어림짐작 나무의 수령이 116년 정도 되었다고 추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첨백당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일제 강점기에 심어진 국내 최고령 홍옥나무가 있습니다.  이곳 평광지역에는 1917년경 과원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이 사과나무는

    우채정씨의 선친이 심은 5년생 홍옥, 국광 등 100여 그루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홍옥나무이며, 매년 많은 열매를 맺고 있어 유전자원으로도 그 가치가 크고 우리나라

    사과 재배사를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나무랍니다.  2009년 5월28일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처음 이마을을 개척한 사람은 우익신(禹翊臣 : 1532~1604)라는 분으로 경기도 여주에서 살고 있다가 임진왜란때 남하하여 이곳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의 아름답고 기름진 땅에 놀라 스스로 소도원(小桃源)이라 했을 정도로 중국의 유명한 시인이 썼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흡사하다 했답니다.

    그가 이곳에서 터를 일구고 산 지 어언 4세기를 넘었고, 따라서 마을의 대다수가 그분의 후손들이며 그 외 몇몇의 타성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들 역시 외손이거나 특별한

    연유로 이곳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평광(坪廣)이란 말도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과 지형이 비슷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당시 주위를 산이 에워싸여 있었으며, 몇구비를

    돌아 협곡을 지나자마자 바로 상상을 초월하는 넓은 들판이 펼쳐진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별유천지(別有天地)요, 바로 무릉도원이었답니다.

     

     

     

     

     

     

    단양 우씨들은 여말(麗末)에 신흥세력인 정도전 일파로부터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벼슬길에 나아가기 보다는 글을 읽고 화목하게 사는 것을

    문풍(門風)으로 삼았답니다.  따라서 크게 입신한 사람들은 없으나 효열(孝烈)정신만은 남달라 많은 효자와 열녀들을 배출하였다고 합니다. 마을 곳곳에 재실과 효열비가 이를 입증하고 대표적으로는 챔백당이 이를 증명합니다. 

     

    또한 이곳은 태조 왕건이 견훤에게 포위되어 목숨이 위태로울 때 그를 대신하여 나가 싸우다가 전사한 장절공 신숭겸의 영정을 모셨던 모영재가 있으며 제일 윗마을 시량리는 태조가 지금의 지묘동 일대에서 패하고 숨어들었을 때 나무꾼이 허기져 지쳐있던 그를 보고 가지고 있던 주먹밥을 주고 나무를 한 뒤 내려와 보니 종적을 감췄다고 하여 실왕리(失王里)였는데 그것이 시량리로 변했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평광동 왕건길은 미록 길지않은 짧은 코스이긴 하나 그 유래와 마을에 관한 이야기는 하염없이 길며 여기저기 숨어져 있습니다.

    그냥 걷기보다는 이렇게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찾아 알아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참다운 여행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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