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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 부왕의 큰 은헤에 감사한다며 지은 감은사 신문왕의 부왕을 향한 사부곡(思父曲)나의 여행이야기/경상도 2012. 4. 2. 14:00
삼국통일의 대업은 이뤘으나 이젠 왜의 침입이 자주 출몰하자 이에 문무왕이 불법의 힘으로 왜의 침략을 다스릴 요량으로 동해에서 경주로 통하는 길목에
절을 세우려고 했으나 완성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찰의 완성을 보지 못한 문무왕은 죽어서 동해의 용이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여 대왕암에 묻히고 그의 뒤를 이은 신문왕이 불사를 이어
완공하고 '부왕의 큰 은헤에 감사한다'란 뜻으로 감은사라고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신문왕은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편안하게 드나들라고 이곳 감은사 금당 구들장 초석 한쪽에 용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황룡사, 사천왕사와 더불어 대표적인 호국 사찰 가운데 하나였던 감은사였지만 임진란때에 왜병에 의해 불타버리는 불운을 겪게 되고 지금은 쓸쓸히 2기의 석탑만이 남아 있습니다.
감은사는 신라의 1탑 중심의 가람 배치에서 쌍탑 1금당으로 바뀌는 과정에 동, 서로 두탑을 세우고 그 사이의 중심을 지나는 남, 북 선상의 중문과 금당강당을 세운 최초의 절이라 합니다.
회랑은 남, 동, 서로 금당 좌우는 동, 서 회랑을 연결하는 주 회랑이라고 합니다.
금당 중문 남쪽엔 정교하게 쌓은 석축이 있으며 밖에는 대종 천 따라 들어온 동해 바닷물이 고여 있던 용담이라는 연못이 있었답니다.
금당 바닥은 마루 대신 돌로 이중의 방형대석 위에 장대석을 걸쳐놓고 그 위에 큰 장대석을 직각으로 마루를 깔듯이 초대석을 깔아 장대석 밑을 빈공간이 되게 특수하게 만들었답니다.이 구조는 다른 예가 없는 것으로 보아 동해의 용(龍)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한 것 같다고 전해집니다.
1959년 탑을 해체복원 하였다가 쌍탑 중 서탑 중앙 사리공에서 창건당시의 사리장엄구와 사리가 발견되었답니다.
사리 장엄구에는 임금이 타는 수레모양의 청동사리공이 정교한 연화문 받침에 57cm 29,5cm 깊이 29,5cm의 함을 놓았으며 함 네모서리에 팔부신장이 새겨져 있고
좌우에 귀신의 얼굴 고리가 있는 화려함과 섬세한 귀중한 유물이라고 합니다. 이 사리공은 보물 제366호로 지정되어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죽어 용이 되신 문무대왕이 대왕암에서 대종천 물길 따라 감은사 연못(용담)에서 금당과 연결된 음통을 타고 올라와 부처님의 정토아래 불국 세계의 조국번영을 발원하고
머물며 조국을 지킨 대왕의 나라사랑 민족 사랑을 폈던 참선의 도량 이였습니다.
감은사 용담에 바닷물을 끌어 드린 것으로 생각되는 대종천은 토함산과 함월산에서 발원힙니다.
1235년 몽고군의 3차 침입으로 4년에 걸쳐서 국토가 유린 되었다. 경주를 불바다로 만들더니 황룡사 9층 목탑을 태워 버렸다. 그리고 선덕왕 신종(에밀레종) 보다
4배나 되는 무게 100톤의 종을 원나라로 가져가려고 하였답니다. 이 거대한 종을 바다가 아니고는 가져 갈수가 없어 토함산 너머 강물 길 대종천을 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무왕의 화신인 호국용은 이를 내버려 두지 않고 배가 대종 천에서 뜨자 갑자기 폭풍을 일으켜 배가 강 밑으로 가라앉았다는 전설로 큰 종이 물에 묻혔다하여 대종천이라고 부릅니다.
지금도 이 곳 사람들은 비, 바람 부는 날에 바다 속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한다.금당터 주변에는 석재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금당터 앞의 석재 중에는 태극무늬와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것이 눈에 띄는데 예삿돌은 아니고
금당이나 다른 건물에 쓰였던 석재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감은사의 건축은 신문왕만의 부모에 대한 감사한 마음 뿐 아니라 전 신라인이 삼국통일의 유업과 태평성세의 편안한 나라를 이룩하신 은혜에
감사한 전 민족적인 감사의 장이였을 것입니다. 또한 대왕암이 있는 바다를 동해구라 하여 성역화 하고 그 대왕암을 바라보며 문무왕을 그리워 했다던 이견대 그 뒤로 이곳 감은사지
그리고 동해구로 유입되어 흐르는 대종천 등 경주 동해권으로 오면 이들과 연관되는 이야기들을 따라 돌아보면 더욱 감회가 새로울 듯 합니다.
문무왕이 묻힌 대왕암에 들려 호국의지의 기상을 이어받고 이견대에 들려 신문왕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느끼고 어디선가 들려올 지 모를 만파식적에 귀를 기울여 보고
에밀레종보다 그 규모가 훨씬 큰 종이 가라앉았다는 대종천에서 혹시나 들릴지 모를 종소리를 들어보고 감은사지에서 용이 지난 흔적들을 살펴본다면 어디선가 부왕을 기리는 신문왕의 사부곡이
어렴픗이 들려오지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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