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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여행] 비장한 한이 서린 10개의 가락지. 왜장을 안고 순국한 논개를 모신 사당을 가다.나의 여행이야기/전라도 2012. 2. 4. 07:00
진주성은 1593년 음력 6월29일 왜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이때의 진주성전투는 3천의 조선 관군․의병과 9만3천의 왜군이 9일간에 걸쳐
혈전을 벌인 임진왜란․정유재란의 7년 전쟁기간 중 최대의 격전이었습니다. 성이 떨어지자 김천일․최경회․고종후 등 수성장들은 남강에 투신 자살했습니다.
왜군은 항전에 참가한 2만~3만에 달하던 성민․피란민들까지 도륙했습니다다. 진주성에 입성한 왜군은 7월7일 촉석루에서 전승자축연을 벌였습니다.
그곳에는 진주기생들이 동원되었고, 논개는 기생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왜군의 전승연에 잠입하였습니다.
그녀는 진주성 함락때 자결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부실(副室)이었고 당시에 위암(危巖)이라
불리던 바위 위에 올라가 왜장을 유혹하였습니다.
왜장 하나가 위암으로 달려들었고. 그는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의 부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였습니다.
일본측 기록에 의하면 그는 가토에게 9백석의 연봉을 받았다하고 가토 막하 부장(副將) 24인 중 서열 1~2위에 랭크되는 인물이었다 합니다.
검술사범 출신인 그는 가토 군(軍)의 선봉장으로서 맹위를 떨쳤다고 합니다.
게야무라는 만취상태였고 논개는 그런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녀의 열손가락에는 모두 가락지가 끼어져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락지의 용도는 여인들의 장신구로 대표되는 것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장의 몸을 꼼짝못하게 하는 용도로 그 쓰임새가 바뀐겁니다.
이미 그녀는 왜장 누군가 한명을 껴안고 죽을 각오로 그곳에 간 것이고 기생을 불러 축하연을 할 정도면
그곳은 분명 장수급들만 있다고 생각하고 이왕 죽는 거 장수급을 논개는 노린것이지요.
논개는 전라북도 장수 계내면 대곡리 주촌마을 출생으로, 성은 주(朱)씨이며 1574년 주달문(朱達文)과
밀양 박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주달문은 신안군의 주촌에서 촌장으로 생활하였다가 40이 넘은 나이에 딸인 논개를 보았답니다.
1578년 부친의 사망으로 숙부인 주달무의 집에 의탁하다가 숙부가 민며느리로 논개를 금품을 받고 도망치고
그 사실을 안 모녀는 친정으로 피했다가 장수관아에 체포됩니다.
1579년 장수 현감 최경회의 심리로 재판이 열렸으나 무죄를 선고받고 돌아갈 곳이 없는 두 모녀는
침방관비를 자청하였고 1592년 17세에 논개는 최경회의 부실이 됩니다.
1593년 최경회가 병마절도사로 제수되어 2차 전주성전투가 시작되고 성이 함락되며 최경회가 순국하자
논개는 기생으로 변장해 왜장 게야무라로쿠스케를 유인 남강으로 같이 떨어져 죽은 것입니다.
남자들도 하지 못했던 일을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논개는 시도하였습니다.
진주성을 함락하고 승리에 들떠있던 왜장들의 분위기도 말이 아니었겠지요. 장수가 더군다나 전장도 아닌 술자리에서
여인의 두팔에 감겨 저항도 못하고 남강에 빠져 죽었으니 말입니다. 어디가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닐 일입니다.
논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생장향수명비(生長鄕竪名碑)는 원래 장수현 시장터에 세워졌는데
이곳 의암사 경내로 옮겨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비문은 헌종 12년(1846) 장수현감 정주석(鄭胄錫)이 지었습니다.
[....영웅열사라도 할 수 없는 일을 연약한 여자가 큰 뜻을 분별하여 자신의 목숨을 순순히 바쳤으니 어찌 열(烈)이 아니라 할것인가] 로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비군 중간에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부끄럽게 여긴다는 자책글을 올려 한탄하는 문구도 들어 있답니다.
1955년 군민들의 성금으로 남산에 사당을 건립 의암사라 하였고 1974년 이곳으로 위치를 옯겼습니다.
매년 음력 9월3일 '의암 주논개 축제'에 각종 문화행사가 치뤄집니다.
2008년 10월 1일 주논개의 표준영정이 새로 봉안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복식과 머리모양등 당대와 맞지않아 논란이 일자 2005년 전주시와 장수군이 공동제작을 함의한 후 전국 공모를 통해
충남대 윤여환 교수의 작품을 선정 2008년 2월 4일 정부표준영정 제7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꽃다운 나이 19세
그 꽃을 피기도 전에 국난을 맞아 요절해야만 했던 그녀의 삶..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직한 지아비의 원수를 갚고자 스스로 기생으로 변장해 적장속으로 들어간 나이 19세..
민족의 수난기에 남자들도 하지못한 일을 갸날픈 여인 아니 지금으로 보자면 어린 소녀의 몸으로
감행한 대담함은 이미 소녀가 아니라 한 맺힌 여인의 절규였으리라..
10개의 가락지...모든 한이 그곳에 맺혀
꽁꽁매인 그 두손은 어찌 풀었얼까..?
겨울이라서 그런지 더욱 스산한 기운이 밀려옵니다.
민족의 수난사마다 잚음을 바쳐 순국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알게되면 될수록
나라가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듭니다.
작게 보자면 지아비의 원수를 갚고자 행한 일이 크게 보자면 나라에 용기를 북돋아주었던 일이 되고
침울해 하며 사기를 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크나 큰 위안이 되며 절치부심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촉매가 되었음이니 어찌 작은 일이라 할 수 있겠는 지.
다시 생각해 보아도 대단한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살짝 열린 문큼 사이로 넓게 펼쳐진 그녀의 고향의 산천이 보입니다.
간혹 너희는 지금 무엇 하고 있느냐며 한 서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이곳에 와서 그녀의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왜장의 몸을 감싸 남강에 투신하였다는 것만 알았지 왜 그랬는 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건 지 그 자체를 몰랐습니다.
전에는 그저 볼것이 없다며 스쳐 지난간 이곳이 얼마나 소중한 곳이었는 지
이번 장수여행은 또다시 내 자신을 자각시키는 깨우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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