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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여행] 임진년 용의 해 쌍용의 기운이 움트는 벽골제에서 용솟음치는 용의 기운을 받다.나의 여행이야기/전라도 2012. 1. 31. 14:49
용의 기운을 얻다..
전북 김제시 부량면에 위치한 벽골제에 가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마주보고 있는 쌍용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새해가 시작되는 임진년 첫날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60년 만에 찾아온 흑용의 해를 기리기 위해
새벽부터 매서운 겨울의 찬바람도 마다않고 나와 첫 일출을 기다려 용의 기운과 새해 첫 일출에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기원을 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곳 김제 벽골제는 용의 해를 맞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 질듯 합니다.
더군다나 2012년은 전북 방문의 해이기도 합니다.
용의 해인 임진년 그리고 전북 방문의 해 두가지를 한꺼번에 맞는 이곳 벽골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빌길에 활기를 찾을 듯 합니다.
사적 제111호로 지정된 벽골제
한국 최고(最古), 최대의 저수지 둑으로 330년(백제 비류왕 27)에 쌓았고, 790년(원성왕 6)에 증축되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후 고려, 조선 시대에 증축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라 흘해왕(訖解王) 21년 (서기 330년)과 20년(서기329년)에 축조되었다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각각 기록되어 있어
신라 흘해왕 때 축조된 것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의 김제지방은 백제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백제의 업적마저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마치 신라의 업적인양 신라왕의 연대를 기록함으로 역사의 혼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역사는 항상 승리한 자의 편에 서서 쓰여지나 봅니다.
벽골제 이름에 대한 유래는 이렇습니다.
벽골제를 쌓을 때 바닷물이 계속해서 밀려들어와 제방이 무너지기를 반복하여 공사가 힘들어지는 난공사가
계속 이어지자 당시 공사감독관의 꿈에 도사가 나타나 푸른 뼈를 흙과 섞어 쌓으면 된다고 하여 푸른뼈를 찾아다니다
발의 뼈가 푸르다는 것을 알고 많은 말뼈를 수집하여 흙과 함께 쌓으니 제방이 단단해져 공사가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이 저수지를 푸른뼈를 섞어 쌓은 제방이라 하여 벽골제라 칭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벽골제는 이제 공원화가 되었습니다.
벽골제를 향하는 입구에서 부터 넓은 마당이 편안하게 펼쳐 보이고 있고 주말이면 나들이 삼아 산책할 수 있게 조성되어져 있습니다.
또한 지평선축제로 인해 벽골제가 많이 알려지자 벽골제 조성사업을 확장시켜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등 다양한 공간조성에 힘을 박차고 있습니다.
또한 김제시에 현존하고 있는 동헌 내아및 석정 이정직 생가, 망해사 낙서전, 등을 재현하여 지어진 기와 2동, 초가 1동의
전통가옥을 만들어 숙박체험장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숙박객들의 편의를 위해 일부 시설은 현대식으로 갖추어 놓았고 전통 한옥에서의 숙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내아 4실, 낙서전 3실, 이생가 2실로 구성되어 최대 숙방 가능 인원은 40명 정도로 위탁운영 되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체험문의는 벽골제 아리랑문학관사업소(063-540-4985, 548-1177)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농경문화의 과거의 모습들을 여기저기 조형물로 구성해 놓아 당시의 시대상들을 엿볼 수 있게 하였고
벽골제 농경문화박물관을 통해 당시의 풍속과 생활상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임진년을 맞아 더욱 그 빛을 발하는 쌍용의 위용은 대단해 보입니다.
각각 길이가 15m, 높이가 2m로 흑룡과 백룡이 여의주를 물고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 벽골제는 이 용에 관한 전설이 여러개가 있습니다.
그 중 많이 알려진 전설은 단아낭자의 전설과 김제 조씨의 시조 조연벽장군의 전설이 있습니다.
먼저 단아낭자에 대한 전설은 사랑과 희생이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신라 제 38대 원성왕때 벽골제의 제방이 비바람으로 인해 무너지자 이는 청룡의 심술로 인해 그렇다는 민심이 팽배해지고
용추제를 통해 산처녀를 용에게 바쳐야 하여야 하는 의식을 치르고자 합니다.
마침 정부에서 파견한 토목기술자인 원덕랑이 도착하여 제방공사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 김제태수의 딸 단아낭자는 그를 사모하였으나
이미 그에겐 약혼녀가 있었고 그 사실은 안 태수는 마침 격려차 찾아 온 원덕랑의 약혼녀를 몰래 납치해
용의 제물로 삼으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 사실을 안 단아낭자는 아버님의 살인을 막고 원덕랑의 약혼녀와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
스스로 용추로 가 몸을 던져 용의 제물이 됩니다.
단아의 값진 희생으로 대망의 벽골제 보수는 완공되었고 이땅에 불멸의 효와 의를 심어 놓았다고 구전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평선축제때에는 이러한 단아낭자의 희생을 추모하는 제의식이 벽골제 장생서 앞에서 치뤄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전설은 용맹한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고려 고종왕 초기 김제 조씨의 시조인 조연벽장군이 벽골용으로 인해 고관대작으로 출세한 전설입니다.
조장군의 소시때 어느날 꿈에 백의노인이 찾아와 "본인은 벽골대제를 수호하는 백룡인데 내일 아침 흑룡이 내습하여 나의 집을 뺏고자 하니
나를 도와 줄 사람은 장군뿐"이라며 도움을 청하니 그 꿈이 하도 생생하여 아침일찍 장비를 챙겨 벽골제로 간 장군은 그곳에서 정말 백룡과 흑룡의
싸움을 목격하고 백룡을 도와 화살로 흑룡을 쏘아 맞춰 흑룡을 물리칩니다. 그 이후 조연벽장군은 백룡의 보답으로 장군은 명장의 이름을 떨치고
장군의 자손들도 모두 관의 대작을 역임하여 칭송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아마 이 쌍용의 모습은 그 때의 모습을 재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벽골제는 김제평야의 수전(水田)경작에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提)가 축조된 후 여러차례 수축공사가 행해졌는데,
삼국사기에 원성왕 6년(760)에 7개 주의 백성들이 동원된 대토목 공사를 하였다는 기록과 설화가 있으며, 고려시대(동국여지승람 벽골제중수비문)에는
고려 헌종(1009-1030)때 벽골제 중수를 한차례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태종실록) 16권, 태종 15년(1415) 전라도 관찰사 박습(朴習)이 벽골제의 저수지로서의 우수성을 논하자
태종이 벽골제의 보수공사를 실행하도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로써 20여일 동안 벽골제 수축공사를 하여 약 300년만에 벽골제가 복구되었다가
5년후인 세종 2년(1420)심한 폭우로 유실, 이후 방치되어 그 넓은 제지(提址)가 전답으로 바뀌어 갔다고 합니다.
벽골제에는 5개의 수문이 있었고 수문의 명칭은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라 하며, 그 중 현재 제방과 함께 남아있는 수문은
이곳 장생거와 벽골제 제방을 따라 남쪽 약 2km에 위치한 경장거만 남아있다 합니다.
1980년대 수문의 일부 복원공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중수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벽골제 증수비의 기록에 제방의 단면과 수문구조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둑의 아래 넓이는 70자요, 위의 넓이는 30자이며, 높이가 17자이고, 수문은 그릉처럼 바라보였다.....또 수문양쪽의 석주심이 움푹들어간 곳에는
느티나무 판을 가로질러서, 내외로 고리와 쇠줄을 달아 나무판을 들어올리면 물이 흐르도록 하였으니, 수문의 넓이는 모두가 13자요,
돌기둥의 높이는 15자이며, 땅속으로 5자나 들어가 있다....".이것이 벽골제의 대략이고 때는 태종15년(1415)입니다.
이제 벽골제는 에전에는 농사기반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저수지로서의 역활을 하였다면
지금은 시민들의 쉼터와 다양한 볼거리 체험거리등을 겸한 전반적인 공원화를 취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에 나오는 실제현장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아리랑기행벨트사업까지 추진하고 있어
벽골제와 이어지는 관광자원으로서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2년 전북방문의 해를 맞아 더욱 새롭게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제는 점차 그 모습을 새롭게 변신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이미 운행되어 큰 각광을 받고 있는 지평선 축제를 발판삶아 다양한 관광 인프라를 개발중인 김제
앞으로도 많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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