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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여행] 구례를 대표하는 전통가옥 구름속의 새 - 운조루(雲鳥樓)나의 여행이야기/전라도 2011. 7. 28. 01:00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위치한 운조루는 조선 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세운 99간(현존 73간)의 대규모 주택으로 조선시대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는
품자형(品字形)의 배치형식을 보이고 있는 양반가입니다.
우리나라 삼대명당 중 한곳인 구례 금환락지(金環落地)에 자리잡은 대표적인 양택지인 운조루는, 그 터 또한
3대진혈(眞穴)중의 하나인 금구몰니(金龜沒泥)의 명당으로 집터를 잡으면서 땅을 파보니 금구몰니의 명당임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어린아이 머리크기만한 돌거북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을 앉힐 때 거북자리가 안방을 들일 예정이었다가 아궁이에 불을 때면 거북이가 말라죽는다 하여
안방자리에 습기가 많은 부엌을 들이고 부엌자리에 안방을 들였다 합니다.
집앞의 연당은 남쪽의 산세가 불의 형세를 취하고 있어 화재를 에방하기 위해서 조성한 것이랍니다.
류이주는 그가 처음 이사와 살았던 구만들(九萬坪)의 지명을 따 호를 귀만(歸晩)이라 했으며
이 집을 귀만와(歸晩窩)라고도 불렀답니다. 운조루라는 택호는 '구름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란 뜻과 함께
"구름위를 날으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디 이집의 이름은 중국의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따온 글로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의 문구에서
첫 머리 두 글자를 취해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대문위에 걸려있는 뼈는 호랑이 머리뼈인데 유이주가 한양으로 가던 중 잡은 호랑이로
호피를 벗겨 임금에게 진상하니 백호장군이라는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호랑이뼈를 도둑맞아 말머리 뼈로 대신하고 있답니다.
이집은 크게 나눠 안채, 사랑채, 행낭채, 제실로 나뉘며 사랑채에는 큰사랑채, 아랫사랑채로 나뉩니다.
주인은 큰 사랑채에서 거처하면서 손님을 맞이하거나 재우기도 하였답니다.
큰 사랑채에서 잇대 ㄱ자형으로 대문쪽으로 뻗은 아랫사랑채는 농월헌(弄月軒)이라고도 불리며 이곳에 있는 누마루를
귀래정(歸來亭)이라 부릅니다.
큰 사랑채 서쪽에 세방향으로 툭트인 누마루는 여름거쳐로 쓰였고 이 사랑채에는
이산루(二山樓), 족한정(足閒亭), 운조루(雲鳥樓), 귀만와(歸晩窩)등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담벽에는 능수화와 더불어 보기드문 무궁화가 피어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안채는 두간의 마루방과 온돌방이 있고 서쪽은 부엌간 남쪽은 두간의 창고간이 중간의 안마당 입구에
연결되고 다락으로 되어 있으며 마루쪽 동쪽은 온돌방이 계속되어 작은 부엌과 헛간이 있어 이는
한국 중부지방 양식이며 귀족계급에 의하여 건립된 주택형식입니다.
안채에는 지금도 후손들이 살고 있고
마루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빨간 고추와 선반위에 올려놓은 바구니들이 참 정겹습니다.
운조루가 아직까지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명당중의 명당에 집을 지었다는 것도 있지만
이 저택이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충실하게 따른 역사적 유물로서도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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