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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여행] 왜 이곳의 미륵불만 북쪽을 향해 바라봤을까? -미륵리사지-나의 여행이야기/충청도 2011. 7. 25. 01:00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을 슬퍼해 금강산으로 갔는데 도중에 누이인 덕주공주가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돌에 마에불을 만들었고 마의태자는 이곳에 석굴을 지어 미륵불이 북쪽을 향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답니다. 망해가는 신라의 부흥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석가모니도 아닌 아미타불도 아닌 미륵불을 왜 모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아마 미래에 오실 부처님께 신라의 재건을
기원하며 부탁하는 의미가 아닌가 혼자 생각해 봅니다.
미륵불이 북쪽을 바라본 또 하나의 설득력이 있는 전설은 태조왕건이 백두산과 만주의 옛 고구려땅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삼국시대에서 부터 활발히 번창했던 미룩신앙이 고려시대에도 이어졌음을 알 수 있는
곳 중에 하나가 이곳 미륵리사지가 아닌가 합니다.
고려초기의 하늘재와 지릅재 사이에 위치하고
석굴암을 모방한 듯한 석굴타입의 형태를 유지하였다 하나 석재가 아닌 목재로 그 형태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현재에는 그 터만 남아있고 화재로 소실되어 진듯합니다.
미륵불과 같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 돌거북은 귀부이며 귀부라 함은 거북모양의 비석 받침을 뜻합니다.
이곳의 귀부는 검은 돌 자체를 통째로 다음은 것으로 보이며 비좌의 흔적은 보이나 비석은 아직도 그 행방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거북의 어깨부분을 자세히 보면 작은 두개의 거북이 올라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그당시에 지어진 석조물들의 잔재들이 한곳에 나란히 배치되어져 있습니다.
미륵불과 나란히 석등과 5층석탑이 북쪽을 향해 서 있고 보물 제 95호로 지정된 5층석탑은
최대한 자연석을 이용해 정교하진 못하지만 소박하며 둔탁한게 자연스러운 멋이 남아있습니다.
오층석탑과 석불 사이에 위치한 석등은 유형문화재 제 19호로 연꽃모양의 보주위로 아무런 모양이
없는 돌기둥으로 앙련(仰蓮)을 조각하였습니다. 보주도 연꽃 모양입니다.
석등 안으로로 가만히 석불의 얼굴을 모셔봅니다.
석불 뒤로 가서 북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찍으려고 했으나 관리인의 만류로 그만 포기해야 했고
얌전히 석불을 마주보고 찍어봅니다. 보물 제 96호로 특이한 점은 다른 부분들은 다 이끼도 끼고
세월의 흔적들이 여실히 남아 있는데 유독 얼굴 부분만은 깨끗하니 새로 만든 듯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둥근얼굴에 마치 초생달 마냥 휘어지는 눈썹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온달장군이 가지고 놀았다는 공기돌입니다.
간절한 망국의 신라재건을 위한 염원과 잃었던 고구려의 옛땅을 되 찾으려는 강렬한 의지가 공존하는 전설이 깃든
미륵리사지에서 삼국시대부터의 요충지이자 격전지였던 중원 충주의 중원문화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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