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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여행] 임금님의 친필로 쓴 현판을 하사받은 도동서원
    나의 여행이야기/경상도 2011. 7. 7. 07:30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위치한 도동서원문경공 김광필 선생의 학문가 덕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선조 원년(1568)에

    처음 세워 쌍계서원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져 선조 37년(1604) 지금 있는 자리에

    사당을 다시 지었고, 선조40년(1607)에 임금님이 직접 도동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고종8년(1871)의 서원철폐령의 대상에서 제외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입니다.

     

     

    입구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벌판에 400년이 넘는 고목이 우뚝 솓아 마치 도동서원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고고히 서 있습니다.

     

     

     

     

    낙동강을 바라보는 수월루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가끔 머리를 식혔으리라 생각되며

    풍강좋은 높은 곳에서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모습도 연상하게 됩니다.

    원래 수월루는 처음에는 지어지지 않았다가 1855년 창건되었습니다. '서원의 제도를 갖추려면 누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서원을 출입하기에 가파르고 답답하다'라는 이유었답니다. 지은 지 얼마안된 1888년 불타버려 오랫동안 터만 남았다가

    1973년에 복원 되었답니다.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라는 의미로 자부심이 강한 도동서원병산서원, 도산서원, 옥산서원, 소수서원과 더불어 5대서원으로 꼽힙니다.

    서원 건축이 가져야 할 모든 건축적 규범을 완벽히 갖추고 있는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서원으로 평가된답니다.

     

     

     

     

     

    도동서원강당과 사당 그리고 이에 딸린 담장이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담장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이 아주 유별납니다. 이곳 도동서원의 담장은 우리나라 담장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하니

    이곳을 방문하실 때에는 담장도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쉽게도 우리가 오기전 손님맞이를 한다고 강당에 선풍기와 상을 펴서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찍을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보물로 지정된 담장 밖으로는 소나무들이 마치 아지랭이처럼 솓아오르고 마치 원시림처럼 담쟁이가 나무를 두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담장과 기와를 여러형태로 잡아봅니다.

     

     

     

     

     

     

     

     

    도동서원에서 현풍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다람재가 나옵니다.

    그곳 다람재에서 보면 도동서원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날은 안개가 끼는 바람에 시계가 좁아 선명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희미하게 나마 도동서원이 보입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칭송받는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과 더불어 한훤당 김광필동방오현이라 칭하고

    문묘에 배향되는 영예를 주어졌고,  조광조, 김안국, 성세창, 이장곤과 같은 쟁쟁한 인물들을 제자로 배출할 정도로 생전부터 후학들의 존경을 받았다합니다.

     

     

     

     

    고려말 정몽주에서 비롯되어 길재, 김숙자, 김종직에게 차례로 전해진 유학의 도통을 이어받은 조선조 사림파의 적자로 일컬어진 김광필

    당시 군수였던 김광직 문하에서 소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마침내 김종직의 수제자로 성장해 조선조 유헉의 적통을 잇는 영광을 누리지만

    단지, 그의 제자라는 이유로 연산군에게 죽읨을 당하는 불운도 격게 됩니다.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병패하 할 수 있는

    당파로 인해 아까운 사람이 희생되어야 하는 그런 안타까움은 이젠 정말 없어져야 한다는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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