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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여행] 천년고찰 천등산 봉정사
    한국의 사찰/경상 2011. 5. 31. 21:14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입니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습니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습니다.

     

     

     

    봉정사는 건립된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삼층석탑

    부속암자로 영산암지조암 중암이 있습니다. 특히, 고려태조와 공민왕께서 다녀가기도한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만세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풍판을 달아 가구의 노출을 방지하고 비나 바람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하였습니다.

    건물의 구조이층 누각식 건물로 일층인 아랫부분은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츳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습니다.

    우하주는 누상주에서 사용한 것보다 더 굵은 부재를 사용하여 견고하게 보이며 사찰의 중정으로 오르는 통로의 구실을 합니다.

    만세루는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으며 법고와 목어 판이 놓여져 있어 예불을 알리는 고루로서의 기능을 합니다.

    목어는 나무를 깎아서 잉어 모양을 만들고 속을 파내어 비게 한 다음 그 속을 막대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불구입니다.

    염불과 독경이나 예배할 때 쓰이는 것으로 물속에 사는 고기들을 구원하고 수중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두드리는 것입니다.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 나라의 목조건축 중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건물입니다.

    가공석 및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과 주심포(柱心包)건물로 고려시대의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극락전 해체 보수공사 때에 1625년(인조3)에 작성한 상량문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상량문은 '천계 5년 3월'에 중수하면서 작성한 공사 기록인데,

    '前中創至正 二十三年 癸卯 三月日'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중창은 중창(重創)을 의미하며 지정 23년은 고려 공민왕 12년(1363)입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께서 개창하였다고 상량문의 신라 때에 창건은 이를 가리킵니다.

    공민왕 12년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은 이보다 오래 전에 이미 건물이 조영되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건물은 스님들이 교학을 공부하는 장소인 봉정사의 화엄강당으로 온돌방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극락전과 대웅전이 17세기에 중수되었는데 스님들의 강학공간화엄강당도 함께 중수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세루]

     

     

    대웅전의 건립연대는 자세한 사료가 없어서 정확한 연대를 알지 못하나 건물의 일부를 해체하여 수리할 때 일부분의 묵서명이 발견되어 추정이 가능합니다.

    이 대웅전은 현존하는 다포계 건물로는 최고의 목조건물이라 추정됩니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입니다.

     

     

     

     

     

     

     

    이곳은 공덕당으로 절에서 공양을 만들어 먹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봉정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덕휘루를 통하여 대웅전과 극락전을 둘러보고 대부분 돌아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연에 동화되며 산사의 고즈넉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사립문을 지나 요사채 뒤쪽 산자락에 자리잡은 이곳까지 발길이 닿습니다. 이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우화루가 있고 그안으로 들어가면 영산암이 있습니다.

     

     

     

     

     

    영산암의 '영산'이란 원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設)하시던, 인도 왕사성 근방에 있는 영축산을 말합니다.

    법화경을 설법하실 때의 그 모임을 일러 불교에서는 영산회상이라 이름하며 이 모임의 장면을 영산회상도라 하여 법당의 후불탱화로 많이 봉안됩니다.

     

     

     

    영산암의 출입문인 우화루 밑을 지나 암자의 안마당에 닿으면 고건축의 미학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도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는 마당의 멋스러움에 넋을 빼앗기게 됩니다.

    마당의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동산을 만들어 기암괴석을 옮겨놓고 그 위에 멋스럽게 휘어진 고목인 향나무와 관상수를 비롯하여

    계절을 다투며 다양하게 피어나는 꽃나무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각 건물에는 툇마루와 누마루 등이 설치되어 서로 끊어질 듯 이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의 다양함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재창조하는 신비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봉정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지닌 곳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봉정사의 역사에 대하여 알려주는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창건에 관한 사실도 전설에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고 있고 그 이후의 역사적 사실도 몇 차례 중수한 것을 제외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은 전무한 편입니다.

     

     

     

     안동을 방문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2세가 이곳 봉정사를 다녀감으로 더욱 유명세를 떨었던 곳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있던 곳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그냥 조용한 산사이기만 합니다.  아침예불을 드리며 조용히 수행하시는 스님들의

    경읽는 소리만 경내에 잔잔하게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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