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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여행] 옥포대첩 기념공원에서 이순신장군을 그리워 합니다.
    나의 여행이야기/경상도 2012. 4. 27. 07:00

     

     

     

     

     

     

     

     

     

    경상남도 거제시 옥포2동에 커다란 기념공원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중 전라좌수사 이순신장군과 경상우수사 원균장군이 공동으로 작전을 진행하여 수군 첫 승리를 장식하여

    이후의 전황을 유리하게 전개시켰던 옥포해전을 기념하여 조성된 공원입니다.

     

    옥포대첩 기념공원이라 불리며 옥포만이 내려다보이는 옥포동 산 1번지 일대에 1996년 준공되었습니다.

     

    해상의 전신(戰神) 그 당시 왜나라에서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한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이곳에도 조성되어 있어

    먼저 그곳을 참배하러 갑니다.

     

     

     

     

    바다에서 단 한차례의 패전도 허용하지 않은 23전 23승 그 시작이 바로 옥포해전에서 부터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까지 그가 바다에 나섰다 하면

    항상 승리를 이끌어 내었던 이순신장군은 당시 일본인들에게 치를 떨며 무서워 하였던 바다의 전신(戰神)이었던 것 입니다.

    이순신장군을 더욱 빛나게 했던 명랑해전은 세계 그 어떤 곳에서도 유래가 없는 해전으로 칠천량해전에서 원균이 잃고 남은 달랑 13척의 전함으로

    10배가 넘는 133척의 왜선을 맞아 승리를 이끌어 낸 전투이며  영국의 넬슨제독과 견줄만한 동양최고의 해군제독이라 칭송하지만 비교가 될 수 없는

    대단한 전과를 올린 그의 공적은 전세계에서도 유래없는 승리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역사 알기를 소홀히 하고 괄시를 받고 있는 현실..당장 눈앞에 보이는 동해와 일본해의 표기 조차 옛날에 조선해 동해로 표현되던

    바다를 일본해로 빼앗기고 그냥 넘기다가 이제서야 동해와 일본해로 병행하자며 애원해야 하는 현실..

     

    남들은 역사의 중요성을 알기에 사학자들을 우대하며 그들의 연구를 중요시 하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나라의 역사는 찬밥덩어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외국어나 다른 과목에 밀려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외우기 힘들다 하여 점차 외면 당하고 사학자 출신들은 굶어 죽기 쉽다 하여 전공을 피하기까지 하는

    현실입니다.  주변국가인 일본과 중국은 역사를 왜곡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바꾸고 있지만 역사를 외면하며 알 수 없는 우리나라는 그저 전전긍긍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무척 안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남들을 뭐라 하기 전에 우리자체가 포기한 역사이니 남들 탓을 하기에도 창피한 일이지요.

     

    성웅이라고 떠 받들지만 그의 혁혁한 전과와 전술은 오히려 우리나라 보다 외국에서 더 그를 연구하며 많이 알고 있고 오히려 치를 떨어야 할 일본 조차

    그를 영웅시 하며 그를 연구하고 분석하여 우리보다도 더 이순신장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순신장군과 함께 조선해군의 위상을 드높혔던 판옥선과 거북선이 홍삼문을 지나면 좌우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판옥선은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거북선 건조의 기본이 되었던 전투함입니다.  평전선 선체위에 상장을 얹고 신방을 세워 방패의 기능을 하였고

    포혈을 내어 곡사 방포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화력으로는 천지현황포와 장군전, 신기전, 활 등으로 무장하여 포격 후에는 적의 상황을 살펴봄으로

    작전수행이 가능하였고, 특히 병사 중에는 노 젓기와 항해술이 능숙한 병사들에 의해 배의 기동력을 높게 하였습니다.

    난전중이나 근접전 중에도 노군과 치군은 적으로 부터 안전한 2층에 위치되어 노출되지 않는 장접이 있어 기동력을 떨어뜨리지 않아 모든 전투함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세계의 자랑거리이자 무적의 전투함인 거북선은 세계4대해전 중 하나로 칭송받는 한산대첩의 일등공신으로 판옥선에 둥근 개판을 덮고 선두에 용머리를

    달아 형상이 거북이와 비슷하게 만든 배로, 적의 근접과 등판을 막기위해 철편을 덮고 송곳을 꽂았으며 선두의 좌, 우와 상장의 자, 우현에 포혈을 만들고

    천지현황포와 신기전, 완구포 등을 장착하여 돌격선의 역활을 하여 적의 기선제압을 하기에는 최상의 전투함으로 일조를 한 전함입니다.

    이순신 하면 바로 떠오를 정도로 거북선은 그와 함께 해전을 누비며 모든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무적의 철갑선입니다.

     

     

     

     

    외삼문을 향해 걸어 갑니다.  사당출입시 기본의례는 우측으로 들어가 좌측으로 나오는 것이 기본이겠지요..

    들어갈 시 우측문은 오른발을 먼저 딛어야 하고 나올 시 죄측문은 왼발을 먼저 딛고 나와야 하는 게 예의랍니다.  중앙은 신도(神道)로서 출입하면

    안된다 합니다.

     

     

     

     

     

    외삼문을 들어서니 우측에는 사당과 좌측에는 제숙소가 있습니다.

     

     

     

     

     

    내삼문으로 들어가기 전 옥포앞바다 전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연무가 끼지 않았다면 더욱 아름다웠을 바다가 흐릿하게 보이니 약간 아쉬움이 찾아듭니다.

     

     

     

     

     

     

    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장군 무관이었으나 전투만 잘하는 장군이 아닌 지략이 돋보이는 장군으로

    문무를 동시에 겸한 장군입니다.

    정보를 소홀히 하지 않고 지형과 지물을 이용하여 유리한 위치에서 적을 맞이하였으며

    그 결과 항시 승리를 이끌어 그를 믿고 따르는 병사들의 깊은 신뢰를 받았으며

    지원을 나온 명나라 군사의 모든 지휘권마저 양도받아 통제할 정도로 명나라 장군에게 마저

    존경을 받았습니다.

     

    부하에 대한 배려가 대단하여 왜란당시 전사한 모든 사람의 이름이 기록에 남았으며

    장교에서 부터 노비출신의 병사들마저 모두 기록되어 지금의 여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하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였음을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역사학자들의 평가로는 이순신장군이 왜란 후반의 전사는 어찌보면 온전한 영웅으로 남을 유일한 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조정의 형편은 왜란종결 후 조정의 세력다툼에 이순신은 첫번째 제거대상으로 부상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일 수 밖에 없고 왜란 중에도 투옥될 정도니 종결후에는 더욱 심할 수 밖에 없다고 추측합니다.

     

    사후 6년째 좌의정 추종, 덕풍대원군에 봉해지며, 선무1등공신으로 추대됩니다.  1634년 인조 21년 무려 사후 45년 후

    지금의 '충무공'의 시호를 받고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을 합니다. 차라리 잘 돌아가셨습니다.

    손수 왜란의 마지막을 종식시키고 더러운 꼴 안보고 세력다툼의 아비규환에서

    가슴아파 할 일이 없으니깐요..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자신의 편에 서라는 청탁에 시달렸을까요?

    속하지 않는 다고 미움을 받고 배척을 당할 것이 분명한데 그 꼴을 얼마나 원통해하며 지켜봐야 할까요?

    지금도 그런데 그때는 분명 더 했을꺼란 생각이 듭니다.

     

     

     

     

     

     

    님이 첫 승리를 이끈 옥포앞바다는 지금은 저렇게 고요하고 잔잔하기만 합니다.

    또한 그 앞바다에서는 지금도 조선소가 들어서 커다란 배를 중수하고 있습니다.  2010년 4월 기준으로 세계 3위의 수주잔량을 기록할 정도로

    이곳 옥포앞바다에서 조선해양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당시 저 거북 구(龜)자를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진저리를 치는 왜군들의 모습들이 상상이 됩니다.

    이순신장군이 지키던 바다에서는 우리에게 부적과도 같은 저 깃발이 왜군에게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을 글자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직도 바다를 누비며 호령하던 장군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누군가가 그리 묻더군요..세종로에 왜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서 있냐고 합니다. 

    누군가가 그리 대답합니다.  "세종로와 태평로가 뻥하니 뚫려있어 남쪽 일본의 기운이 강하게 들어오게 되므로 이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라며

    풍수지리학자들의 주장을 배경으로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변형된 조선왕조의 도로 중심축을 복원하기에는 돈이 많이 들고 일본이 가장 무서워 하는

    인물의 동상을 세워라" 하고 지시하여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쳐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결정되었다 하네요

     

    죽어서까지 당신은 일본과 싸우며 아직도 나라를 지키고 있는 겁니다.  이젠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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