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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여행] 절치부심 백제의 중흥을 일으키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은 공산성에 가다
    나의 여행이야기/충청도 2012. 2. 28. 09:09

    아름다운 백제문화가 숨쉬고 있는 공주.  이곳은 한성에 이어 백제의 두번째 수도 이기도 합니다.  그곳 공주 시내에 위치한 공산성은 둘레가 2,200m. 웅진성(熊津城)·쌍수산성(雙樹山城)으로 불리기도 했다. 금강에 접한 표고 110m의 구릉 위에 석축과 토축으로 계곡을 둘러 쌓은 포곡형(包谷型) 산성입니다.  475년 백제 문주왕이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 사비(泗沘:지금의 부여)로 옮길 때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축조 되었답니다. 

     

     

    공산성 입구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풍경입니다.  시대에 따라 그 이름도 바뀌었던 공산성은 백제시절에는 웅진성, 고려시대에는 공산성, 조선 인조이후에는 쌍수산성이라고도 불이었던 이곳. 다시 현대에 들어와서는 공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발자취를 찾는 사람들과 산책을 즐기며 금강이 내려보이는 성벽을 따라 풍경을 즐기는 등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무령왕의 발 받침대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무령왕릉연문이 그 자채도 우아하게 우뚝 서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생각이 들었는데 그 모양이 왕의 발 받침대를 본 딴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 발 받침대의 실물을 보고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자체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화려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발 받침대까지 만들었던 그 당시의 발상들이 너무나도 놀랍습니다. 나중에 박물관에 대한 글은 따로 올리겠습니다만 공주를 방문할 때 꼭 공주국립박물관은 들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백제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성(서울)에서 찬란한 백제 중흥기를 맞이하며 한강을 중심으로 비옥하게 살고 있던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을 내주고 이곳 웅진(공주)으로 옮기며 절치부심(切齒腐心) 재기를 도모하며 힘을 키웠고 동성왕때 국가체제를 재벙비하고 무령왕때 호남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개발을 추진 정치와 경제기반을 회복하는 등. 백제는 이곳 공주에서 다시 도약의 발판을 삼은 것입니다. 이곳 공산성은 활발히 백제의 힘을 키워갔던 동성왕 때 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어 진답니다.

     

     

    과거 공주시에 흩어져 있던 관찰사, 암행어사, 목사, 군수들의 행적을 기리는 선정비, 불망영세비등 47기의 비석들이 금서루에 올라가는 길목에 모아져 있습니다. 이 비석들은 대부분 역사적 인물들의 공덕을 친송하는 내용을 세긴 공덕비들 이라고 합니다..

     

     

     

    점차 찬란했던 백제문명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일찌기 패망해 그 존재의 흔적들이 많지 않았던 백제의 아름다운 유산들을 다시 재조명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보이고 이곳 공주는 아직도 개발하여야 하는 부분들이 참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나, 둘 서서히 들어나는 백제의 아름다운 문명들을 보는 즐거움도 아주 크리라 생각이 듭니다.

     

     

     

     

    금서루의 육중한 철문을 지나면 마치 시대가 바뀌어 백제시대로 들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이곳 뿐만이 아니라 항상 고궁이나 고택의 정문을 통해 들어갈 때면 그 느낌이 들고는 합니다. 어디선가 그 시대 사람들의 숨결과 체취가 묻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했습니다.  오늘도 역시 예외는 아니네요.

     

     

     

     

    성벽길을 따라 걸어봅니다.  구릉을 따라 지어진 성벽길 더군다나 일직선이 아닌 구릉의 모양에 따라 굽은 성벽길이 이어지니 그 선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경직되지 않고 느긋하게 흐름에 따라 그 모양을 그대로 살린 어색하지 않고 마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느낌 조차 듭니다.

     

     

    공복루를 향하는 길목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금강풍경입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그래도 시원하게 펼쳐진 금강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한동안 그 경치에 반해 자리를 뜰 줄을 모릅니다. 

     

     

    오던 길을 되 돌아보면 저 멀리 금서루의 모습이 보이고 가는 길로 내려다보면 금강과 나란히 이어지는 성벽 중간에 공북루가 보입니다. 강남과 강북을 왕래하는 길목이었을 공북루...그 당시에는 나룻배가 있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배에서 내려 저 곳으로 왕래를 했겠지요.  그 당시에는 성루 안에는 주막과 장터도 조성되어 있었을 듯 합니다.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말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금서루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뒤돌아보니 아직도 금강을 바라보며 마치 망부석이 되어버린 듯 한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이해가 됩니다. 저 또한 그곳에서 한동안 넋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레가 총 2.2km인 공산성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미처 시간이 없어 다 둘러보지 못했지만 날씨 좋은 날에 천천히 이곳 성곽길을 따라 둘러보아야겠습니다. 성내에는 영은사(靈隱寺)·광복루(光復樓)·쌍수정(雙樹亭)·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쌍수산정주필사적비(雙樹山亭駐驆事蹟碑)와 주초석·창고터·연못터 등이 남아 있고, 만하루지(挽河樓址)·임류각지(臨流閣址)·장대지 등이 발굴조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동쪽과 서쪽에는 보조산성이 있어 공산성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공산성은 백제멸망 뒤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던 곳이며, 1623년 이괄의 난 때 인조가 이곳으로 피난했던 일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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