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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여행]퇴계선생의 가르침이 남아 있는 곳 도산서원
    나의 여행이야기/경상도 2011. 6. 1. 01:20

     

     

     

     

    도산서원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침 가는 길에 비를 만나 다소 불편했지만 빗속에서 찾은 도산서원은 더욱 그 모습이 고풍스러워 살갑게 다가옵니다.

     도산서원 들어가는 입구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어 예전이나 지금이나 도산서원까지는

    무작정 걸어들어가야 하는 운명인가 봅니다.

     

     

    녹음은 더욱 푸르게 황톳길은 더욱 짙게 비춰지니

    풀냄새와 황토냄새가 진하게 어우러져 우산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와 더불어 후각, 청각을 자극시킵니다.

     

     

     

     

    강건너 보이는 단은 시사단(試士壇)으로 그 위의 비각(碑閣) 조선시대 지방별과(地方別科)를 보였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것입니다.

    정조대왕께서 퇴계 이황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그16년(1792)에 관원 이만수를 도산서원에 보내어 임금의 제문(祭文)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고 그 다음날 이곳 송림(松林)에서 어제(御題)로 과거를 보였는데, 응시자가 7천명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이 지었답니다.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없어지고 단만이 현 위치에서 지상 10m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과거(科擧)의 자리를 표해두고 있습니다.

     

     

     

    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졌으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됩니다.

    도산서당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입니다.
    도산서당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습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

    함께 지어졌습니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곳은 열정(冽井)으로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입니다.

    역경(易經)의 정괘(井卦)'정렬한천식(井冽寒泉食)'에서 의미를 취했습니다. '우물은 마을이 떠나도 옮겨가지도 못하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다'

    이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수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도산서당선생이 몸소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57년에 착공하여 1560년에 완공하였습니다. 서원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퇴계가 직접 기본설계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서당은  ─자형태의 단정한 3칸 건물부엌, 온돌방, 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부엌 반 칸, 마루 한칸을 더 달아 내었고, 건물 3면에 퇴를 놓아낸 점이 특이합니다.

    방은 완락재(玩樂齎)라 칭하며 '완상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란 뜻이고

    마루는 암서헌(巖栖軒)이라하여 '학문에 대한 자신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해서 바위에 깃들어 조그만 효험을 바란다'라는

    겸손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도산서당의 위쪽으로 서원을 건립하면서 도산서당농운정사의 사이에 진입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진도문은 이 진입공간을 따라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아래쪽의 서당영역과 서원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외부와 경계를 짓는 문으로 편액을 걸어 상징적인 예교(禮敎)의 의미를 갖게 하였습니다.

     

     

     

    이곳은 진도문을 가운데 두고 동,서 두곳으로 나누어진 광명실(光明室)중 동광명실

    서책을 보관하고 열람할 수 있는 오늘날의 도서실입니다. 현판은 퇴계선생의 친필입니다.

    습해를 방지하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었습니다. 1819년(순조19)에 세워진 동광명실은 역대 왕의 내사서적(內賜書籍)

    퇴계선생이 친히 보시던 수택본(手澤本)을 보관하였으며 원래는 동광명실만 있었으며, 근대 들어 서광명실을 증건하였습니다.

     

     

     

     

    이곳은 전교당으로 서원의 강학건물입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이며 원장실과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단부를 높여 위엄을 살렸고

    양쪽으로 계단을 설치하였습니다. 유교사상이 깊은 시대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두개의 계단은

    원래 중앙의 계단이 스승이 이용하는 계단이고 왼쪽에 치우쳐진 계단이 제자들이 이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좌측계단을

    이용하고 제자들이 중앙계단으로 다녔답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는데 스승이 제자를 사랑함으로 스스로를 낮춰 좌측계단을

    이용했다는 것과 계단 바로 옆에있는 원장실을 바로 이용하시라는 제자들의 배려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면에 있는 현판은 조선중기의 명필한석봉의 글씨로 여기에도 재미난 사연이 있습니다.

    선조(1574)한석봉을 불러 글을 쓰라하고 한자한자 불렀답니다. 일부로 뒤로부터 불러서 무슨글인지를 모르게 하였고

    원(院)서(書)산(山)자까지 부른 뒤마지막으로 도(陶)자를 부르자 그제서야 도산서원의 현판인 줄 깨달은

    한석봉이 마음이 흔들려 도(陶)자 글씨가 다른 글씨에 비해 흔들렸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평상시 존경하던 퇴계선생의 도산서원 현판을 자신의 글로 쓴다는 기쁨과 떨림이 전해졌다는 얘기입니다.

     

     

     

     

    이곳은 삼문(三門)으로 상덕사로 들어가는 사당문입니다. 내삼문(內三門)이라고도 불리워집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삼문형식으로 상덕사와 같은 시기에 지어졌습니다.

    계단 때문에 문 안쪽과 높낮이의 차이가 생겨 전면기둥을 1단 낮은 자리에 세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단아래까지

    내려오는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역3태극 문양에 단청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주시할 것은 우리가 평상시 보는 2색인 음양태극이 아닌 3색의 삼태극인가 라는 점입니다.

    삼태극은 천·지·인 3합 사상을 상징하는 문양이며 삼태극에는 평등과 민주적 사상이 있으며 삼라만상을 창조하는 이치가 담겨 있어

    예로부터 신성히 여겨 왔습니다. 음양태극음양론과 이분법 구조를 중심으로 주로 중국일본에 많이 나타나고

    음양태극과 달리 사람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사상의 삼태극 문양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가장 이어 온 문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산서원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의 삼태극이 있습니다.

    서당영역과 서원영역을 구분하는 진도문에는 정방향의 삼태극문양이 있고(문이 열려 있어 사진으로 찍지를 못했습니다) 이곳 내삼문에는

    역방향의 삼태극이 그려져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만 진도문의 삼태극소중한 생명을 기르고 결실을 맺는다는 뜻으로 서원에서 수많은 인재를 길러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내삼문의 삼태극생명의 탄생과 결실을 나타낸답니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뜻을 나타낸답니다.

     

     

     

     

    이곳은 장판각으로 전교당 동쪽에 위치한 서원의 출판소목판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퇴계의 문집, 유묵, 언행록, 도산십이곡, 선조어필, 병서(屛書)2,790여장의 판객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체계적인 분류와

    안전한 관리를 위해 광영실서책과 함께 2003년 4월에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되었습니다.

     

     

    이곳은 전사청으로 사당에서 제사 지낼 때 쓰이는 음식인 제수를 차리고 보관하는 곳으로

    음식을 날라오는 고직사와 사당 사이에 위치합니다.

     

     

     

     

    이곳은 상고직사(上庫直舍)로 서당 영역의 고직사와 구분하기 위하여 상고직사라 합니다.

    이곳은 서원의 관리와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노비들이 거처하던 곳입니다.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문화해설사와 같이 천천히 둘러 본 도산서원

    그냥 둘러볼 때와는 달리 설명을 겻들여 보니 더욱 도산서원을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이곳을 둘러보실때는 그냥 오시지 마시고 매표소 입구에서 문화해설사를 요청하여 둘러보면 더욱 생생히

    도산서원을 이해하며 둘러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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