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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쉼터의 고장 단양을 가다 - 단양8경중 남한강을 낀 4경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나의 여행이야기/충청도 2011. 5. 19. 01:24

     

     

     

     

    단양8경에는 남한강을 끼고 볼 수 있는 도담삼봉,석문,구담봉,옥순봉 4경이 있으며

    계곡을 끼고 볼 수 있는 계곡4경사인암,상,중,하선암등이 있습니다.

    전편에 계곡 4경을 소개해 드렸고 이번에는 도담삼봉과 석문 그리고 유람선을 타며 보는

    구담봉과 옥순봉을 소개할까 합니다.

     

    제 1경 도담삼봉

    단양 8경중에서도 제1경에 속하는 도담삼봉은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의 유년시절을 함께 해준 벗인

    퇴계 이황선생의 시심을 흔들어 놓은 명승지이기도 합니다.

     

    또한 훗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을 정도로 도담삼봉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답니다.

     

     

     

     

    남한강의 푸른 물결을 비단삼아 두르고 있는 도담삼봉은 당당한 풍채를 지니고 있는 남편봉을 중심으로

    아담한 모양새의 처봉과 첩봉이 양옆을 지키고 있는데 특히 남편봉은 삼도정이라 불리는 육각정자를 멋들어지게

    쓰고 있어 더욱 그윽한 운치를 자아냅니다.

     

     

     

     

    또한, 도담삼봉 가까운 곳에 석문도 있어 한꺼번에 팔경중 2경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석문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바라본 도담삼봉은

    드넓은 남한강 푸른물결  가운데 우뚝 서 있어  신비스러우면서도 고혹적으로 보입니다.

     

     

     

     

    길이 가파러 잠시 중간 팔각정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넓은 남한강 풍경을 바라보고 사진도 찍습니다.

     

     

     

    그러다 조금만 더 걸으면 바로 석문이 보입니다.

     

    제2경 석문

    단양팔경 중 제2경에 속하는 석문은 도담삼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도담삼봉에서 상류 쪽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전망대로 이어지는 계단에 접어드는데

    이 길을 따라 300m 쯤 숨가쁘게 오르면 무지개를 닮은 석문이 너른 품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이합니다.

     

     

     

     

    자연의 솜씨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형미가 돋보이는 석문은  울창한 수풀로 한껏 치장하고 멋들어진 풍경 속으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 또 다른 풍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둥그렇게 열린 석문안에 남한강의 시원한 풍경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탁 트인 남한강의 풍경도 매력 있지만 이렇게 특별한 공간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왠지 신비스러우면서도 색다릅니다.

    남한강의 물길을 따라 보트를 타며 바라보는 석문의 풍경도 역시 일품입니다.
    마고할미의 전설이 서려 있는 암석이나 자라몽양을 닮은 자라바위 등 곳곳에 보물처럼 숨겨진 풍광들을 찾는 재미도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둘러보는 제3경 구담봉과 제4경 옥순봉

    구담봉과 옥순봉을 보기위해 유람선을 탑니다.

    장회나루에는 두가지코스가 있는데 장회나루를 출발하여 옥순대교를 경유 돌아오는 코스와

    청풍나루를 거쳐 충주까지 가는 코스가 있습니다.

     

    저는 옥순대교를 돌아오는 유람선을 탑니다.

    유람선을 타고 좀 있으니깐 선장님의 구수한 목소리가 들려오며 주변풍경에 대한

    설명을 시작합니다.

     

     

     

    제비봉..단양팔경에는 빠졌지만 수려한 모습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구담봉에서 바라보면 마치 제비가 나는 모습같다 하여 이름 지어진 제비봉입니다.

     

     

     

     

    제비봉에서 조금 더 지나자 바로 보이는 것이 제3경 구담봉입니다.

    깍아지른 듯한 장엄한 기암절벽 위의 바위가 흡사 거북을 닮았다 하여
    구담봉이라 합니다.

     

     

     

     

    갑자기 선장님이 왼쪽을 바라보라 해서 보니 강가에 작은 묘 하나가 보입니다.

    퇴계 이황과 각별한 로멘스가 있었던 두향의 묘라 합니다.

    여기서 잠시 두향과 퇴계 이황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아 봅니다.

     

     

     

    퇴계 이황선생의 매화 詩와 두향이야기

    매화를 노래한 수많은 조선의 선비들 중에 퇴계(退溪) 이황(李滉)만큼
    매화(梅花) 사랑이 각별했던 이도 없다.
    매화에 대한 시 91수를 모아 ‘매화시첩’으로 묶을 정도로 매화 사랑이 각별했다.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 선생이었던 지라
    한 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은 녹여였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어
    어느덧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 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 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前身應是明月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幾生修到梅花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고
    오늘날 사용하는 1000원권 지폐에도 퇴계의 얼굴과 함께 서원의 영원히 살아 있다.

    퇴계 이황이 사랑하는 두향에게
    黃卷中間對聖賢 (황권중간대성현)
    옛 성현의 오래된 책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 (허명일실좌초연)
    초연히 밤을 새워 앉아 있노니

    梅窓又見春消息 (매창우견춘소식)
    창가에 다시금 봄 소식 보게하여

    莫向瑤琴嘆絶絃 (막향요금탄절현)
    기막힌 비파소리 대하는 듯 싶네


     

     

    두향의 묘를 지나 유람선은 서서히 옥순봉으로 향합니다.

     

     

     

     

    제4경 옥순봉

     

    장회나루에서 청풍나루까지 가는 물길에서 구담봉의 꿈결같은 풍경을 뒤로하고 계속 유람선을 달리면서 눈 앞에 빨간 교각이 매력적인 옥순대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는 단양팔경의 제4경인 옥순봉에 거의 다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희고 푸른 빛을 띤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싹과 같이 보인다는데서 유래한 옥순봉은 원래 청풍에 속해있는 경승지였습니다.

    조선 명종 때 관기였던 두향은 그 절경에 반해 당시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는 청을 넣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청풍부사의 거절로 일이 성사되지 않자 이황 선생은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 이라는 글을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사연이 전해집니다.
    훗날 청풍 부사가 그 글씨를 보고 감탄하여 단양군에 옥순봉을 내주었다는 뒷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광에 과연 주인이 있겠는가? 보는 이는 그저 오랫동안 잊지 않도록 두 눈과 가슴에 그 모습을 깊게 새길 뿐...

     

     

     

     

    주옥같은 선장님의 입당으로 숫한이야기와 전설을 들으면서 가다보니 어느덧 옥순대교에 도착했습니다.

     

     

     

     

     

    해도 점차 서쪽으로 기울며 선장님의 해설도 마치고

    다시 배는 돌아 장회나루로 향합니다.

    다시 돌아가면서 선장님의 해설을 상기하며 유람선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을 두눈에 가득담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가슴에 품고 아쉬움은 이곳에 남겨두고 돓아옵니다.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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