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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을 밝히는 부처님의 등불 아름다운 해안국도변에 자리잡은 등명락가사.
    한국의 사찰/강원 2012. 2. 25. 07:00

     

     

     

     

     

     

    안인진에서 정동진으로 향하는 해안도로는 아름다운 해안길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동해의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감상하며 가다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찰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바로 등명락가사 입니다.

    월정사의 말사인 동명락가사는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위치하며 동해가 내랴다 보이는 괘방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북쪽의 고구려와 동쪽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기 위하여 부처님의 사리를 석탑 3기에 모시고 수다사로 창건하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등명사지오층석탑입니다.  신라 말 전쟁으로 불에 탄 것을 고려 초기에 중창하며 등명사로 이름을 바꿨고 조선 초기에

    폐사(廢寺) 될 때까지 번창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강릉도호부 동쪽 30리에 등명사가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그후 1956년 경덕(景德) 영해당 선사가 작은 암자를 짓고 관세음보살이 머무른 산의 이름을 따서 낙가사라 하고 옛 사찰의 이름인 등명을 앞에 붙여

    등명락가사 라고 하였습니다.  1977년 경덕은 영산전을 건립했으며, 1982년 주지로 부임한 청우(淸宇)는 범종각, 삼성각, 요사채, 극락전, 약사전을

    세웠답니다. 현재 이곳에는 대웅전, 극락전, 오백나한전(일명 영산전), 약사전, 산신각, 범종각, 안심당, 요사채 등의 당우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강릉부 동쪽 30리에 있었고 절의 위치가 어두운 방 가운데 있는 등불과 같은 곳이라 하여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또 이곳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삼경()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빨리 급제한다고 해서 붙였다고도 한다. 고려 때에는 매우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조선 중기에 폐사되었습니다.


    폐사된 이유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등명사의 쌀 씻은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 용왕이 노하셨기 때문에 임금의 눈에 안질이 생겼다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임금의 특사가 배편으로 와보니  사실이라 절을 폐사시켰다는 이야기에서 등명사의 규모가 컸음을 짐작케 합니다. 또 숭유억불정책을 펴던 조선 초기에 정동에 있는 등명의 불을 끄면 불교가 망한다는 생각으로 정동에 위치한 등명사를 폐사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1950년대 다시 중건된 등명락가사의 일주문은 다른 사찰의 일주문과는 달리 대리석으로 기둥을 세웠습니다.

    기둥과 천장에 여의주를 다투는 모습이 힘차게 느껴지는 용을 새겨 놓았고, 정확히 동쪽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일주문 한가운데 나침반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등명락가사를 대표하는 것이 셋 있는데 하나는 등명사지오층석탑하고 영산전의 오백나한상, 그리고 바로 이 등명약수가 있습니다.

    등명감로약수라고도 불리는 이 약수는 부인병이나 성인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유명합니다.  저역시 항상 이곳을 지날때에는 이곳에 들려 약수를 마시곤

    했습니다.  철분성분이 강해 특유의 찝질한 맛이 나지만 워낙 유명하여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항상 마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추운 날씨 탓인지 고인물이 얼어 버렸네요..많이 아쉬웠습니다.

     

     

     

     

     

    모처럼 이날은 큰 맘먹고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습니다..항상 약수만 마시고 지나쳤는지라 아쉬운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몇번을 들렸는데 자세히 둘러보지를 않아 다소 미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이문을 통해 들어서니 본존인 극락보전과 영산전이 바로 앞에 나타납니다. 먼저 영산전을 들어가봅니다.

    영산전 안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백나한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문화재 유근형이 5년에 걸쳐 만들어서 1977년 10월에 모신것으로 심혈을 기울여 청자로 구운 약 30cm의 청자 나한상 오백 개의 모습이 모두 달라 더욱 돋보인다고 합니다.

     

     

     

     

    영산전에는 중앙의 영산회상도를 배경으로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연등보살과 미륵보살의 삼불상이 자리잡고 있고 그 뒷편에는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중앙불단 좌우에 각기다른 형상의 나한상들은 남북통일을 명원하며 만든 인간문화재 유근형옹의 작품들 입니다.

     

     

    [극락보전]

     

     

    [중앙의 아미타불과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범종각]

     

     

    [삼성각]

     

     

     

     

    사람들의 흔적을 찾기 힘든 이곳 등명락가사는 간혹 한두명씩 법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고 모습을 보곤 합니다.

    영산전 계단 중간에 당당히 서 있는 사자상의 표호소리가 어디선가 들릴 듯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사람의 흔적을 찾기 힘들고 적막하기만 합니다.

     

     

     

     

    본 밥당이 있는 마당에서 밑으로 내려오면 만월보전과 5층석탑이 보입니다.

    만월보전은 약사전인듯 중앙에 약사여래불과 좌우에 일광변조보살과 원광 변조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등명사지오층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7호)는 원래 등명사가 있던 곳에 세워졌던 것으로 조선시대에 폐사 되면서 절터와 오층석탑만 남았습니다.

    그러다 낙가사가 다시 중창되면서 다시 단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구전에 의하면 창건당시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이라고는 하나 기단부의 구성과

    탑신부 각부의 양식으로 볼 때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의외로 등명락가사도 와서 보니 알아야 할것들이 꽤 많았습니다.

    무심코 그냥 지나갔던 이곳 등명락가사..태백산맥의 한 줄기를 물려받아 동해의 푸른물을 바라보며 괘방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

    등명락가사라는 이름처럼 동쪽의 부처님의 불을 밝히는 지방 해수관음도량의 요래라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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