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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여행]영조대왕의 사모곡이 스며있는 곳 숙빈최씨 동이의 위패를 모신 보광사한국의 사찰/경기 2012. 5. 7. 07:00
어버이날을 맞아 가볼만한 곳을 한곳 추천합니다. 서울 근교에 있어 나들이 하기에도 좋고 드라마 동이에서 한효주가 역활을 맡았던 숙빈최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영조대왕의 사모곡이 스며있는 보광사입니다. 지진희 한효주 주연의 드리마 동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총 60부작의 드라마입니다. 천민출신 무수리로 숙빈 자리에 오른 뒤, 아들을 임금으로 올린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었던 드라마였습니다.
파주 고령산 아래 자리한 고즈넉한 절집인 보광사..이곳은 영조임금의 애뜻한 사모곡의 애환이 스며든 곳으로 자신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묘인 소령원이 보광사와 가까이 있어 이 절을 숙빈 최씨의 원차로 삼아 대웅보전, 광응전을 중수하고 만세루를 건립했으며, 어실각을 세워 숙빈의 영정과 신위를 모셨다고 합니다.
절의 창건은 894년(신라 진성왕 8)에 왕명에 따라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215년(고려 고종2)에 원진국사가 중창을 했고, 1388년(우왕 14)에는 무학대사가 삼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 때 폐허화된 것을 1622년(광해군 14)에 중수했다 합니다.
서울에서 보광사(普光寺)를 가는 길에는 벽제가 있습니다. 오늘날에 벽제 하면 화장터나 공동묘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옛날에는 그 유명한 벽제관(碧蹄館)이 있었던 곳입니다. 중국으로 오가던 사신행차는 물론 서북으로 떠나던 관변행차도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벽제는 서울 장안에서 50리 길, 옛 사람들의 걸음으로 하루가 걸리던 길이었습니다.
보광사로 가려면 이 벽제 삼거리에서 됫박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됫박고개를 넘어야 했고, 지금은 차로 쉽게 넘어갈 수 있으나 예전에는 무척이나 힘들게 넘었을 것 같습니다. 영조는 이 고개가 소령원에 누워 있는 자신의 생모와 더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했는지 더 파 낮추라고 해서 '더 파기 고개'라고 했습니다.
이 뒷박고개를 넘으면 ‘고령산보광사’라 편액한 일주문이 나타납니다. 고령산 아래 자리한 고즈넉한 절 집 보광사는 한강 이북에서 6대 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는 유서가 깊은 절이기도 합니다.
정면, 측면 모두 1칸의 사모지붕 건물인 범종각은 대웅보전에 있던 숭정칠년명동종(崇禎七年銘銅鐘)을 봉안하기 위하여
1990년 쯤 건립하였습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선 인조12년(1634) 설봉자(雪峯子)가 만들었다 하며 이 범종의 형태는 현등사 종이나 설봉자의 또다른 작품인 고려사 종과 양식이 매우 흡사하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푸른 녹이 감돌며, 볼륨감과 안정감이 있는 조선 후기의 범종입니다.
보광사 경내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한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건물이지만 지금의 전각은 1740년(영조 16) 무렵 거의 새롭게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석등이 있는 앞마당보다 몇 단 높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만세루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기둥에는 배흘림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고 그 밑의 주춧돌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기둥 밑부분 역시 주춧돌의 윗면의 상태에 맞추어 깍아 세운 것이 특징입니다. 또 벽은 흙벽이 아닌 나무벽으로 되어 있으며, 그려진 벽화 또한 색다른 모습입니다.
대웅보전은 현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건물전면의 ‘대웅보전’의 글씨는 영조 친필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으로 이루어진 삼세불과 그 옆으로 다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입상으로 봉안되어 있는데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이 불상들은 1215년 절을 중창할 때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불화로는 5위의 불상 뒤에 있는 석가모니후불탱을 비롯해 신중탱, 감로탱, 칠성탱, 독성탱, 현왕탱 등 모두 6점이 봉안되어 있는데, 화기에 의하면 모두 1898년에 예운상규(禮芸尙奎), 경선응석(慶船應釋), 금화기동(錦華機同), 용담규선(龍潭奎禪) 스님 등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또한 불단 왼편에는 금고가 하나 있는데, 중앙에는 태극무늬를 그리고 가장자리에는 꽃무늬가 그렸으며, 전면에 ‘대황제폐하만만세(大皇帝陛下萬萬歲)’ 등의 명문이 보아 조선 말기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합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원통전은 예전의 쌍세전 건물을 허물고 1994년에 새로 건립되었습니다.
내부에는 최근에 조성한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중앙에 모시고 ,좌우에는 삼장탱화와 지장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중 지장탱은 보광사에 남아 있는 불화들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802년에 경욱(慶郁)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원래는 수구암(守口庵)에 봉안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삼장탱은 대웅전의 불화들과 함께 1898년에 동시에 조성된 것이며, 그림을 그린 금어는 경선응석(慶船應釋), 금화기동(錦華機同), 용담규선(龍潭奎禪) 스님입니다.
원통전 뒤쪽 축대 위에 자리한 어실각은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전각입니다. 1740년(영조 16) 보광사가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의 묘소인 소녕원(昭寧園)의 기복사(祈福寺)가 되면서 건립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의 건물은 정면, 측면 모두 1칸 규모의 사모지붕 건물로 어실각 안에는 숙빈 최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어 내부는 볼 수가 없습니다.
대웅보전 뒤쪽 축대 위에 자리한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대웅보전과 같이 측벽이 나무판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1863년(철종 14) 중건되었을 때는 나한전으로 불리었지만 지금은 응진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 그리고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탱화로는 중앙의 석가모니후불탱을 비롯해 4점의 나한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석가삼존상과 16나한상은 나한전이 중건된 1863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석가모니후불탱은 근래에 조성되었지만 나한탱은 1877년(고종 14)에 금곡영환(金谷永煥), 한봉창엽(漢峯瑲曄), 만파정탁(萬坡定濯)등의 스님들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마침 스님이 예불중이라 내부는 촬영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각전 위쪽의 넓은 터에 연화대좌 위에 서있는 석불입상은 호국대불로 불립니다. 이 석불입상은 1980년 1월 대웅보전의 보살상 복장이 도굴을 당했으나 다행이 진신사리만은 남아 있어 이를 다시 봉안하고자 함에 이 일대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격전지임을 감안하여 위령불 삼아 조성하자는 인연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 대불의 복장에는 보살상에서 나온 진신사리 11과 뿐만 아니라 5대주에서 가져온 각종 보석과, 법화경, 아미타경 및 국태민안 남북통일의 발원문 등이 함께 봉안되어 있습니다.
대웅보전과 마주하여 자리한 만세루는 원래 누각 건물이지만 승방과 연결이 되어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건립된 연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1740년(영조 16) 무렵 보광사과 중건될 때 건립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합니다. 건물은 높직이 쌓은 축대 위에 세워졌으며, 정면은 9칸이고 팔작지붕을 올렸습니다. 누마루 건물은 굵고 큰 기둥을 세우고 난간을 둘러 한 때 좌선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누마루의 주심도리 상단에는 1913년에 기록한 ‘염불당중수시시주안부록(念佛堂重修時施主案付祿)’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건물 후면 작은 마루도리에도 1914년에 기록한 시주질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무렵 다소의 중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1913년에 건물의 일부 중수가 있었고, 이어서 1914년에 승방을 누에다 덧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한편 누마루 정면에는 ‘만세루(萬歲樓)’라는 편액과 승방에도 ‘고령산보광사(古靈山普光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고령산보광사’라는 글씨는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 보광사에는 현재 유골을 봉안하는 납골당인 영각전을 건립하여 많은 신도들이 이곳으로 유골을 모시고 있습니다.그리하여 영가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사가 자주 치뤄지고 있으며 그 가족들이 찾아와 참배를 올리고 돌아가는 모습들이 자주 보입니다.
보광사는 몇번을 들렸던 곳이었으나 자주 찾아간다는 이유로 자세히 살펴보지를 못했고 이곳이 영조의 숨결이 스며들고 또한 숙빈최씨의 위패가 모셔졌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동이 이후 숙빈최씨를 알았고 우연히 경내의 어실각에 대한 안내판을 읽어 본 후에야 비로소 이곳이 영조의 친 어머니 숙빈최씨 동이의 위패가 모셔진 걸 알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한번 드라마의 위력을 느꼈고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게되어 보광사를 다시 보게끔 하는 역활을 하였으니 앞으로도 다른 곳을 들릴 때 반드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상세히 둘러볼리라 다짐을 합니다.
이곳을 다녀오면서 소개했던 맛집 포스팅 다시가기 ▶ http://blog.daum.net/woogilane/7045500